▲동숭교회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거리인 주변 지역과 조화롭게 건물을 신축했다. 밤에 내부 조명을 켜면, 건물 자체가 지역을 비추는 조명이 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소극장과 카페들이 즐비한 서울 대학로에서 낙산(駱山) 방향으로 가다보면, 최근 새로 신축한 동숭교회(목사 서정오)가 나온다. 문화·예술의 중심 거리에 위치한 동숭교회는 바깥에서 볼 때는 현대적인 문화 건축물을, 내부는 영성을 강조한 유럽 교회를 연상케 한다.

“교회 같지 않은 교회로 지어 달라.” 서정오 담임목사는 건축 설계 당시 이같이 주문했다고 한다. 물론 ‘교회답지’ 않은 게 아니라, 기존 교회를 답습하지 않고자 했다는 얘기다. 동숭교회는 수백억 원을 들여 주변 경관을 해칠 만큼 높고 빨갛게 번쩍이는 첨탑과 위압적인 구조로 세상의 빈축을 사는 교회 건축에 대한 선입견을 탈피하고자 애썼다. ‘세상과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 ‘문화적 공간과 경건한 예배가 조화를 이루는 교회’를 추구했다.

▲동숭교회 예배당 전경. 바닥 강단 의자가 모두 나무로 지어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동숭교회 건물의 주요한 특징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도 대학로를 지나다 주변 골목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교회 마당으로 부담 없이 들어선다. 편안함과 동시에 교회 공간 곳곳에서 신에 대한 경외감, 신앙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5cm 폭의 기다란 창을 통한 자연광을 살린 기도실은 도심의 바쁜 일상을 벗어나 잠시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영혼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을 불쑥 들게 해준다. 들어올 때는 쉽게 들어오지만 들어온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영적 갈망이 생기는 경건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예배실 천정에 하늘로 난 창이 있다. 이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고 비가 올 때는 빗소리가 그대로 들려 예배 중에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현대적 감각의 문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지은 건물이지만 동숭교회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건축 설계를 맡은 민현식 교수(서울예술종합학교)의 ‘검소’와 ‘소박’이라는 건축 철학이 스며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닥부터 강대상까지 모두 나무로 지어진 예배당은 장식을 최대한 배제했으며 매우 간결하고 절제된 구조를 띈다. 일반적으로 예배당 중앙에 달린 크고 화려한 십자가 대신 정면 오른쪽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은은한 철제 십자가를 걸었다. 앉았을 때 허리와 다리가 수직이 되게 만든 나무 장의자는 다소 딱딱하고 투박하지만, 예배드리는 동안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사방이 온통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동숭교회를 교회 같지 않게 느끼게 한다. 창과 문을 통해 교회 내 각 공간들끼리 서로 들여다보일 뿐 아니라 교회 바깥의 골목길에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는 교회 구성원 간에 그리고 교회와 교회 밖 세상과의 ‘단절’이 아닌 ‘소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또 건물에서 불을 켜면 그 빛이 길가로 그대로 전해져 건물 자체가 지역을 밝히는 거대한 조명기구가 되기도 한다.

▲인근 직장인들이 와서 음악을 감상하며 자유롭게 영성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마련된 공간. 정면에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창을 두고 창 너머 벽에는 담쟁이덩쿨을 심어놓았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동숭교회는 교회 전체가 다목적 문화시설 같다. 모든 예배당은 강대상만 치우면 공연이나 영화 상영, 세미나 등이 가능하다. 지하에 있는 카페 ‘에츠’는 복음성가를 틀고 싼 가격의 차를 팔아 교인들만 이용하게 되는 것을 지양하고, 교회 밖 사람들에게 질 좋은 커피와 편안한 쉼을 제공하는 카페로 자리 잡을 계획이다. 신축 건물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옛 교회 건물은 30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재건축할 예정이다. 비싼 대관료와 상업적 기준 때문에 극장을 잡지 못하는 어려운 연극·뮤지컬·콘서트 팀에게 대관해준다는 방침이다.

동숭교회 문화 담당 부목사인 최은호 목사는 “교회 재건축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있는데, 어떤 건물을 짓고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며 “건물을 막아놓고 교회 내 활동을 위주로 사용하기에 질타를 당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숭교회는 지역 사회에 공간을 통한 섬김을 실천하고자 한다. 강당이 없는 인근 초등학교에 행사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등 지역과 함께 공유할 계획이다. 물론 장소 대여를 통한 이윤은 남기지 않고 전기와 냉난방시설 이용 등 기본적인 관리 비용만 받는다는 방침이다. 또 인근 직장인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점심 시간에 자유롭게 묵상하고 갈 수 있도록 개방할 예정이다.

▲서정오 담임목사. 서 목사는 영성이 빠진 문화는 딴따라에 불구하고, 문화가 없는 영성은 고루하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서정오 목사는 동숭교회 담임을 맡은 지 10년이 됐다. 미국 유학 시절 리처드 포스터에게 영향을 받은 후 동숭교회로 부임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이 교회의 사명이 무엇일까 골몰하다 문화 선교를 교회의 비전으로 삼았다. 인근 대학로 지역을 오가는 젊은 층과 문화·예술인들을 겨냥한 선교 전략인 것이다. 또 서 목사는 7년 전 당시 막 창립한 문화선교연구원(원장 임성빈) 1, 2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당시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이던 최은호 목사를 만나 문화 사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서 목사는 동숭교회에서 문화와 영성을 자신의 목회 철학의 두 기둥으로 세웠다고 밝힌다. 문화는 영성이 표현되는 그릇이고 영성은 문화의 내용이라는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론에 따라 “영성이 빠진 문화는 딴따라가 되고, 영성이 문화로 표현되지 않으면 고루해지고 현대인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올해 50년을 맞은 동숭교회는 6, 7년 전까지만 해도 짧지 않은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던 교회였다. 당연히 당회에서도 복잡한 설득 과정을 거쳤으나, 지금은 오히려 장로들이 교회 건물을 잘 지어서 우리끼리만 소유하면 안 된다며 지역 사회와 공유할 것을 적극 찬성할 정도라고 한다.

서 목사는 많은 교회들이 문화를 너무 선교를 목적으로 한 전략과 수단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한다. 교회가 쌀 한 포 주고 예수 믿으라고 하는 구제 사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조건 없이 구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긴 안목을 가지고 문화를 통해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숭교회 아동부 예배당. ⓒ뉴스앤조이 신철민

▲교회 꼭대기에 위치한 개인 기도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모든 공간에 유리로 벽과 창을 내어 서로 훤희 들여다보이게 돼 있다. 1층에 마련된 카페 '에츠'. 나무란 뜻의 이름처럼 대학로를 찾는 이들에게 질높은 차와 쉼을 제공할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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