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172호 표지이야기] 당신의 소원은 통일?
평화와 통일로 가는 로드맵 만들자
  • 양희송 (hizsong@newsnjoy.or.kr)
  • 승인 2005.11.30 18:07
  •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6·25 전쟁은 통일전쟁이다” 강정구 교수의 소신발언(?)을 놓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한바탕 야단이 나고, 국가보안법이 다시 한번 화려한 재기를 할 것으로 보이는 와중에도 북한과의 교류는 별다른 영향 없이 진행되었다. 오히려 아리랑 공연 참관 중에 아이를 순산한 깜짝 뉴스가 더 흥미롭게 다뤄지기도 했다. 정작 대북관계에 영향을 준 것은 현대의 김윤규 사장 경질 문제를 놓고 벌어진 긴장이었다. 금강산 관광객의 수를 제한하고, 대남 합작사업 전체의 파트너를 다 바꿀 태세로 험한 분위기를 풍겼다가 수습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 남북문제는 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통일’을 ‘평화에 이르는 과정’으로 봐야

남북나눔운동의 윤환철 국장은 우리의 논의가 ‘통일’에서 ‘평화’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감상적 민족주의의 귀결점으로 ‘민족 통일’을 목 놓아 부르는 것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인데, ‘통일’을 말하면서도 그 내용이 북진통일인지, 남침통일인지, 흡수통일인지 제각각 그림을 그리면서 감동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통일의 방향이 ‘무력’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통일임을 재확인해야 하고, 통일이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긴 과정’이란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란 것이다.

김병로 교수(아세아연합신학원 북한학) 역시 체제 간의 통일을 선언하는 것은 일정 요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든 시행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한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통일 선언이 자신들의 삶의 중요한 드라마인 세대가 점점 세상을 떠나고 나면 정서적 이입이 크지 않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통일이란 최종적인 선언 이전에 있어야 할 구체적 과정을 어떻게 더 실질적이고 세심하게 준비할 것이냐에 관심을 쏟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각종 통일학교가 개설되는 것이나 교회 내에 북한선교부를 설립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지난여름의 IVF, SFC, CCC를 비롯한 주요 대학생선교단체들에서 ‘북한선교’ 관련 강좌들이 열렸고, 많은 청년학생들이 해외선교에 헌신하듯 북한선교에 꿈을 키우고 있다. 사랑의교회, 남서울은혜교회 등에서는 북한선교부가 활동하고 있고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가 적지 않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독청년아카데미’는 연초에 금강산에서 MT를 가졌다. 이런 대중 차원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이제 상당한 저변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선교적 관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평화체제나 통일정책적 측면에서 진일보한 강좌가 많이 개설되고 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는 매회 ‘현대북한의 이해’(홍욱표 생명평화연대 간사)를 통해 이질적인 남북의 체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통일사랑방’에서 8주 과정의 강좌(?)가 진행되고 있고, 청어람 ‘청년정치아카데미’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정이 11월 12일부터 5주에 걸쳐 진행된다. 아데나워 재단의 지원 아래 김성학 목사(에듀플랜 대표)는 통일 캠프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학의 기독학생연합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탈북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일부의 모험주의적 기획 탈북의 문제도 지적된 바 있고,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대한 불만도 여러 방향에서 제기되었다. 국내에서는 북한 인권을 거론하느냐 마느냐가 좌파냐 우파냐를 결정하는 잣대처럼 등장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우파의 과도함도 문제였지만 좌파의 무대응도 문제였다).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탈북동포 돕기, 두 갈래로 전개

첫째는 일단 국내에 들어온 이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것이다. 북한선교와 인도적 지원에 참여해온 여러 교회가 힘을 모아 2004년에 설립한 여명학교(교장 조명숙)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격리 수용이나 일괄적 공립학교 배정 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을 감당하고 있다.

각 교회의 북한선교부가 좀더 직접적으로 탈북동포들을 돕는 것도 고민할 때이다. 탈북동포들은 대부분 중국을 떠돌 때 기독교인들의 도움을 받은 경험들이 있다. 국내 정착에서도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의 도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에 대한 더 밀착된 이해가 부족해서 연결고리가 쉽게 끊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전문 기관과 연계해서 꾸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이다.

둘째는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의 신분과 안전을 해결해주는 문제이다. 이는 이들을 어떻게 한국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논의로 이어질 수도 있고, 중국 내에서 인권 침해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원재천 글 참고) 이 양쪽의 문제에는 탈북자들의 신분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큰 비중이 놓여있다. 한동대의 원재천 교수(국제법률대학원)는 우리가 중국에 탈북자 인권을 보장하라고 압력을 가하려면 최소한 국내의 외국인 난민에 대해 국제법이 보장하는 수준은 시행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난민 신청을 할 때 법률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NGO를 국제법률대학원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탈북자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공조 노력과 결합하면 불필요한 이념 논쟁에 휩쓸릴 이유 없이 국제법과 해당 국가의 법률이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를 들어 탈북동포들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앙과 통일, 함께 갈 수는 없는가?

기독교사회책임과 한기총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서경석 목사는 최근 북한 봉수교회는 가짜 교회이므로 교류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런 주장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공식 교회에 과연 얼마만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을까는 해묵은 의구심이었다. 언제나 준비가 된 다음에 손님들을 맞이하는 봉수교회의 예배나 집회가 남한의 교회와 상황이 같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순진한 것이다.


그러나 남측 방문자들은 봉수교회와 북한의 기독교계 인사들이 과거에 비해 관습적인 체제 찬양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고 전한다. 북한과 오랫동안 교류해온 이들은 북한의 공식 교회가 중국의 삼자 회가 그러했듯, 그 사회에 종교의 자유와 선교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공식화 하는 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결국 중국의 경우도 삼자교회가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회의 비판이나, 가정 교회의 비난을 자초했으나 중국교회를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삼자교회는 비중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선택한 사람들을 북한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통일 문제는 여러모로 한국사회가 우회할 수 없는 과제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한국사회, 특히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진심어린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희송의 다른기사 보기

추천기사

line 예멘인 '가짜 난민'이라는 '가짜 뉴스' 예멘인 '가짜 난민'이라는 '가짜 뉴스'
line 예멘 난민에 대한 성경적 해석 예멘 난민에 대한 성경적 해석
line 20세기 '세계'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 20세기 '세계'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