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전쟁이다.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다. 직장에서 해고되지는 않을까. 해고되지는 않더라도 직장이 망해버리면 어떡하나. 이러다가 나라가 아예 결딴나는 건 아닐까…. 걱정은 어느새 공포로 둔갑해 우는 사자와도 같이 내 앞길에 버티고 서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하나 잘하기만 하면 세상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줄 알았다. 나만 성실하다면, 나만 정직하다면 무엇이든 못 해낼 일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미국의 재채기가 한국의 독감으로 둔갑하는 세상에서는 개인의 자질 그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정직과 성실은 어느 시대나 통용될 수 있는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조직을 박차고 나와 개인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걱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중 80%가 5년 안에 망하고, 15%는 그럭저럭 현상을 유지하며, 나머지 5%만이 꾸준하게 성장한다고 한다. 개인으로 따진다면 자영업을 시작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80%이고, 성공할 확률은 5%라는 말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다윗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윗은 맨 주먹으로 나라를 일으킨 사람이었다. 직장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사울 밑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해 뛰어난 재능과 실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었다. 승진도 빨랐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창업한지 얼마 안 된 일종의 벤처기업이었다. 실력에 따라 회사 경영권쯤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였다. 초대사장이었던 사울은 당장 위협을 느끼고 사원 다윗을 해고해버린다. 그러나 다윗은 갖은 악조건을 이겨내고 유다라고 하는 신생기업체 하나 갖게 되고 마침내는 이스라엘 전체를 인수합병(M&A)함으로써 명실공히 통합 이스라엘의 사장이 된다.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다윗은 얼굴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사자 입에서 양을 빼낼 정도로 용감했는가 하면,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을 음악으로 진정시킬 만큼 수금에 능한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골리앗 앞에 마주선 그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신앙의 사람이었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는 목숨같은 우정을 나눈 다정다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곁에는 늘 하나님이 있었다. 갖은 위기와 시기, 모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늘 다윗을 보호해주셨다. 왕으로 점찍고 사무엘이 그의 머리에 기름 부을 그때부터 하나님은 다윗 편에서 행동하셨다. 물론 다윗도 완전무결한 영웅은 아니었다. 한 여자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앞뒤 못 가리는 사랑에 빠져 여자의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죄를 짓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 죄 앞에서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했고, 그래서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새로 읽어본 다윗은 일의 선후를 헤아려 유리함과 불리함을 정확히 계산해 행동하는 '탁월한 전략가'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집요하게 매달릴 줄도 알았고, 때론 무자비하게 한 족속을 궤멸시키기도 했으며,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했고,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심한 모욕 앞에서도 이를 악물고 참아낼 줄 아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요컨대 다윗의 전략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길 싸움만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길 것 같으면 이길 방법을 잘 선택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조성한 다음에야 싸움에 임했고, 질 것 같으면 아예 싸움에 응하지도 않았다. 다윗은 막막한 현실이 닥쳐올 때 오직 믿음만으로 돌진하는 돌쇠가 아니었다. 다윗은 전략가였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울 때, 먼저 앉아 1만으로 저 2만을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않겠느냐, 만일 승산이 없다 싶으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해야 할 것이다(누가복음 14 : 31).

대부분의 전쟁은 상대방과 나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분석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판난다. 병력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무기의 파괴력은 얼마 만큼인지, 지형지물은 어느 편에 유리한지, 상대 지휘관은 어떤 경력과 능력을 가졌는지, 상대가 주로 구사하는 전술은 어떤 것인지를 잘 알수록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물론 군대의 사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기라는 것도 철저한 전략이 뒷받침됐을 때에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전략이 없는 사기는 무모한 만용에 다름 아니다. 다윗은 이 점을 늘 생각해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쪽으로 싸워왔다. 이를테면 그는 성공을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물론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 면에서는 다윗이 헤쳐나갔던 시대와 많이 닮아 있다. 내가 다윗을 전략가로 새롭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닮은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윗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지팡이를 들었느냐 내렸느냐, 혹은 여리고 성을 몇 바퀴 돌았느냐가 전쟁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하나님이 강력한 능력으로 직접 개입하시는 마당에 지휘관의 전략이란 것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순종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다윗 시대에 접어들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물리적 개입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다윗의 전략이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이 이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혜를 사용하기를 원했고, 그 지혜가 부족하면 당신께 구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대 교회가 다윗 이전의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믿음'과 '돌쇠 같은 순종'은 충분히 강조하면서 이와 같은 '지혜'는 잘 가르쳐주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다윗을 새롭게 읽으며 교회 중·고등부에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만 있으면 만사형통일 거라는 생각으로 사회에 나온 순진하기만 한 기독 청년들이 세상에 휘둘리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 '세계경영'을 맡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한 모습은 맹목적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자기 지혜를 활용해 능동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스리고 경영하는 데는 '믿음'과 '순종'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세상을 전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은 아닐까. 내가 다윗에게서 새로 배운 점은 바로 그 '능력'이었다.

물론 성경을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읽어가는 방식에 대해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본질적으로 성경은 구원과 은혜를 선포하는 책이지 전략을 가르치는 교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과 은혜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것들과 거리가 있는 여러 가지 덕목들은 아예 폐기처분되고 있지는 않은가. 구원과 은혜가 인생에게 더 없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덕목들은 무시돼야 할 만큼 소홀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주지는 않는다. 전승되어 내려오던 다윗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편집했던 성경의 저자는 구원의 장대한 계획을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의 선택과 전쟁에 대한 성경의 시각도 '과정'보다는 '결과'에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된 원인은 구체적인 '과정'을 뛰어넘어 저 멀리 '심적인 상태'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원인) 때문에 다윗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결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을까? 그것만 있으면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자동적으로 같은 결과에 귀착될까?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크리스천 기업으로 큰 성과를 올렸던 이랜드(E-land)를 예로 들어보자. 이랜드의 성공 비결을 투철한 믿음과 비전을 가졌던 사장과 같은 신앙을 바탕으로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직원들에게서 찾을 수도 있다. 이런 평가는 심적인 상태에서 원인을 찾는 성경의 관점과 유사하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인 과정에 눈을 돌려보면, 이랜드는 기성 의류업계가 무시하던 중저가 시장을 겨냥했고, 결재 및 수금 시스템을 개선했으며, 직원들이 직접 자기 사무실을 돌보게 함으로써 기타경비를 최소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랜드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좋은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 여자배구계를 평정했던 LG정유의 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멘트를 잊지 않았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감독과 선수 모두 일치된 신앙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시 LG정유에는 장윤희라는 걸출한 공격수와 이도희라는 정확한 세터가 포진하고 있었고, 거기에 명장 김철용 감독이 지휘하는 '지옥훈련'이라는 가혹할 정도의 조련이 뒤따랐다. 요즘들어 LG정유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은 모르긴 해도 그들의 믿음이 해이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주전선수들의 노쇠화를 보완할 수 있는 세대교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다시 말해 성적 부진의 원인을 '좋은 전략'을 갖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신학적인 여러 입장들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성경 연구와 해석에 관한 한 아마추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무식이 용맹이라고, 알기 때문에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을 모르기 때문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줄여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여러 가지 오류가 글 여기저기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류 자체를 줄이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내가 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다윗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한다. 다행인 것은, 만고에 내 생각이지만, 독자 여러분 또한 필자가 아마추어임을 알기에 전문가를 겨냥하는 엄격한 잣대는 들이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아무쪼록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한 직장인을 가이드 삼아 너그러운 마음으로 시간여행을 떠났으면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3,0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초대 이스라엘 왕정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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