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 약속 장소를 향해 차를 몰고 달려가다가 겪은 이야기다. 약속 장소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매우 비좁았다. 때마침 오가는 차가 없어서 마음놓고 차를 몰고 그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의 중간쯤을 지나온 것 같은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차 한대가 나 있는 쪽으로 들어서더니 비켜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골목길의 중간을 훨씬 지나왔기 때문에 맞은편의 차를 향해 비켜서라는 뜻에서 전조등을 상하로 두 번 조작하였다. 그랬더니 맞은편의 차에서도 전조등을 두 번 깜박이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맞은편을 향하여 뒤로 후진하라고 전조등을 깜박였다. 이번에도 맞은편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전조등을 깜박이면서 대응하는 것이었다. 약이 오른 나는 차를 잠시 정차시켜 놓고 내려, 맞은편 차로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이 골목으로 먼저 들어섰고, 제가 뒤로 후진하려면 거리도 멀고, 그래서 비켜달라고 한 것인데, 그렇게 떡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흥! 누가 할 소리! 나도 이 길로 들어섰는데, 내가 왜 비켜? 답답하면 당신이나 뒤로 돌아가셔."

맞은편 차의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두고 보자는 심사로 차에 올라타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맞은편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3분쯤 지나자 상대편 차 주인이 저에게 다가왔다.

"아니, 젊은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예의가 없는가? 내가 비키지 않겠다면, 자네가 뒤로 후진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떡 버티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니, 아저씨 이 좁은 골목길에서 제가 뒤로 후진하는 것보다 아저씨가 뒤로 후진하는 것이 훨씬 거리가 가깝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에게 물러서라는 겁니까?"

이렇게 항변하다가 언뜻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속 시간이 이미 훨씬 지난 뒤였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그냥 떠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하는 수 없이 후진하여 길을 비켜주고,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기다리던 사람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그때 그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명색이 목사라는 이가 자잘한 일에도 양보할 줄 모르고, 자기 주장에만 급급하여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으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리라.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예수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이 예수의 길을 거슬러가고 있었으니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빈차가 그 골목길 한가운데 정차되어 있었다면, 나는 분명 그 차를 비켜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 속에 누군가가 타고 있었기에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은 뒤부터 나는 어떠한 길에서든 상대편 차와 마주치는 순간이 오면 아예 처음부터 비켜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얼굴 붉힐 일도 없어지고, 언성을 높일 일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사건은 내게, 자기 비움이 없이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뜻마저도 막아서게 된다는 고마운 깨달음을 주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데, 그 중간에 위치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길을 막아버렸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막아선 것은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막혔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주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힘으로 밀어 부치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예수님의 반응은 꾸짖음밖에 없었다. 결국 예수님 일행은 다른 마을로 빙 돌아가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충돌의 위기를 모면한다(눅 9:51∼56).

이 이야기에서 제자들의 방법이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방법은 빙 돌아가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완력을 동원하는 것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참으로 강한 것은 지는 것처럼 사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처럼 나 역시 자기를 비우고 살아야 함을 다시금 마음자리에 새긴다. 자기를 내세우고 완력을 동원하여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또 비워 우리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 참된 지혜임을 깨닫는다.

내가 평소 즐겨 읽고 마음에 새기는 장자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것은 시남자(市南子)라는 사람이 노나라 임금에게 주었던 충고로서,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가라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배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습니다
그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떠내려오던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가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않으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결국 세 번째 소리치는데
그 땐 욕설이 따르게 마련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