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란 무엇인가? 우상숭배란 생명이 없는 물체에게 절하고 섬기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현대에 이 같은 행동으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찾아 볼 수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바울은 일생을 우상숭배와 싸우고 밝혀냈다. 즉 거짓 복음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예수님 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심하게 경책했던 것이다. 바울 자신을 어떤 특별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외친 것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요, 배설물만도 못한 인간이요, 나에게서 배우지 말고 예수님에게 배우고 예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었다.

복음을 이용하여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 바울이 전도한 사람 중에는 바울을 핍박하고 적으로 다가온 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구리장색 알렉산더이다. 이 자가 바울과 대적하여 논쟁이 되었을 때 많은 기독자들이 바울과 적이 되었던 것이다.(딤후 4:14~16)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임을 증거한 바울을(빌 3:8) 자신들의 믿음을 대단한 줄로 착각하던 자들이(귀신을 내쫓고 방언을 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사단의 자녀들도 아주 능숙하게 한다는 사실을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바울을 정죄하는 것이다. 거짓이 승리하고 참된 복음이 비난과 멸시 조롱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자리에 누가 서있는가?

오늘날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거짓 신앙인들에 의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모욕과 멸시 속에 억압당하며 예수님의 고초를 어렴풋이 느끼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우상숭배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울을 대단한 존재로 보는 것이 우상숭배다. 베드로를 대단하게 여기고, 목사들을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목사의 설교를 듣지 않으면 불안하고 교회당에 가지 않으면 안절부절 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그리스도인이란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만을 전하며 사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눈길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바울이 별것이 아니고 목사들이 별것이 아니고 내가 별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분임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자리에 목사라는 존재가 대신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교인들이 목사의 높고 위대해 보이는 권위 속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 신앙을 하고 있다. 예수님에게 가장 촉망받고 칭찬받던 것처럼 보였던 베드로가 바울에게 심하게 경책 받던 일을 상기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에서 벗어나면 그 누구라도 성령의 훈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천사의 몸을 지니는 것도 아니며,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그의 내면은 속물의 심성을 가지고 있다. 육신의 몸을 지닌 인간의 한계이다. 인간의 육신에는 죄밖에 나올 것이 없다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은 복음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권면하고 잘못을 행했을 때에 경책해야 한다. 여기에는 목사라고 종교지도자라고 하여 특별히 예외가 될 사람은 없다. 똑같은 형제요 같은 육신의 몸을 지니고 있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서로를 권면하고 위로하고 교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그런데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사는 나와는 다른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존재로 숭배한다. 한 성령 안에서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었는데 목사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한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 인간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올 것이 없다. 그 분의 은혜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 바울은 우리에게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여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말한다. 그렇다! 성령을 좇아 하지 않는 행동이란 모두가 육체를 위하는 일이요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는 바리새인들의 행위이다. 그런데 성령을 좇아 행동한 목사들을 왜 위대하게 여기고 대단한 힘을 가진 자로 인식하는 것인가? 버러지만도 못하고 만물의 찌기만도 못한 보잘것없는 인간을 소생시켜 놓았더니 그런 목사가 수많은 기독인들의 우상이 되고, 목사가 없으면 신앙생활도 못하는 교인들을 만든 우상의 자리에 목사가 서있는 상황이 되었다.

바울과 베드로가 기적을 행했지만 그 같은 행위를 절대 자신들의 능력으로 여기지를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렸다. 누구라도 주의 은혜가 임하면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성정으로 변하니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으며 자신들을 대단한 능력자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경책을 가한 것이다. 아무도 자신들을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주님대신 인간이란 존재가 우상의 자리에 서지 못하도록 차단시켰다.

베드로와 바울처럼 미리 경계해야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바울처럼 자신들을 별것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사라는 존재를 유명하고 대단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또한 교인들이 그런 우상숭배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심하게 경책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우상숭배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이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내 마음이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목사나 교회당에 쏠리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성령을 좇아 행동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사는 것이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 목사의 책무요 복음증거이건만 목사를 숭배하고 따르고 대단한 능력자로 여기는 자들로 한국교회가 변해가고 있으며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바울과 베드로처럼 심하게 경책하고 야단하기는커녕 좋게 여기며 수수방관하는 목사들이 많다. 우상숭배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인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높아진 것을 훼파하고(교회당이든지 목사든지 교인이든지 높아진 것은 모두가 바벨탑이요 우상숭배다) 무너뜨리기 위해 주님의 영이 이 땅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좇아 사는 자란 끊임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교만을 버리고, 은혜를 날마다 느끼며 사는 자이다. 그 때문에 은혜 속에서 날마다 죽기를 바라는 심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복음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증거하는 자이다. 특별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잘나서 목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가르침 때문에 가슴을 찌르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오직 미천하고 지극히 작은 자요 벌레만도 못한 속물들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스스로 나타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감사한다. 그러므로 설교하는 지체나 목사를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로 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느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사실을 깨닫고 사나 죽으나 주님의 십자가 도만을 외치며 살다가 떠나야 하는 나그네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외에 다른 곳에 관심과 눈길이 쏠려 있다면 그는 우상숭배 하는 자요 간음하는 자요 거짓복음을 증거하는 자다. 예수님 대신에 멸망의 가증한 인간 우상이라는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 가장 멀리해야 하는 거짓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우상화이다.

인간의 우상화를 훼파하고 그 자리에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올려놓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다.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되는 일은 목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 사실을 주님의 은혜에 의해 알게 됨이 주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