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엔 교수 3명의 논문표절사건이 국제적인 파장을 몰고 오고 일간지마다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비록 불신자라도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를 들어서 스스로 사표를 내면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고서 믿는자로서 부끄럽기도하고 부럽기도했다.

목사의 설교표절 문제에 대해선 떠들기만 했지 정작 본인이나, 당회나 교단이나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해당 목사나 당회 장로들, 교단의 목사들 모두 마치 믿음의 한 식구라는 것을 과시하듯이 용서, 사랑만 외치며 서둘러 덮으려고만 한다. 참 기이한 모습이다. 심지어 권세 가진 목사들이나 장로들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억압하며 때론 마녀 사냥같은 징계도 하지 않는가?

예레미아가 그렇게 울고 다니며 외친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인 것 같다.

---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5:30-31).---

많은 경우 설교표절 자체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전후의 사정이다. 곧 표절을 시도한 마음의 동기와 표절이 드러난 후의 진정한 회개와 관련한 마음의 흐름이다.

표절의 동기는 다양할 수가 있지만 사단의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 남의 설교가 너무 좋아서 그랬다면 그나마 그런 목사는 표절을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도 인간적인 허물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제도적인 개선 등을 통해 표절의 상처가 치유되고 종결될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동기가 자기의 영성을 위장(과시)하려는 영적인 거짓에 있었다면 그 목사는 쉽게 인정하고 정직한 회개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이번의 기사처럼 남의 간증을 표절할 뿐 아니라 성령마저 부담없이(?) 속이는 완고한 거짓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짓과 문제가 계속된다. 이런 때에는 특히 -설교표절- 그 후가 더욱 심각하다.

이런 교회에서는 보통 성도들이 목사파 (혹은 친위 당회파)와 하나님파(혹은 반대 당회파)로 나뉘어 반목하면서 그들의 영적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사단만 팔장끼고 즐기고. 그런 목사일수록 책임질 줄 모르고 세상 육적인 이익이 생길 때까지 나가지 않고 버틴다.

그리고 설교시간이나 교회의 모든 사역에서 자신을 변명하며 때로는 성도들을 향해 저주와 거친 말의 공격마저 서슴치 않게 된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억눌리게 되고, 문제는 그것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해결책은 보통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안되는 것 같다.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물리치지 못했던 귀신처럼 기도와 금식만이(마17:20) 해결책인 것 같다. 이번 P 교회(한국말 첫 자는 ㅂ 교회)의 A 목사(실제 ㅈ 목사)를 보며 쓴 것이 지난번 기사인 "세 사람의 아나니아"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사들의 이런 거짓을 가끔씩 분명한 증거와 함께 세상에 드러내신다. 왜 그럴까? 아마도 진정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아닐지... 그 목사와 성도들을 진정으로 구원하시려고.

믿는자들이 특히 목사가 불신자들보다 못한 양심의 순수성과 희미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할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이여, 먼저 그대들부터 정직하고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가진 후에 예수님을 전하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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