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의 눈동자가 강단의 목사에게 집중된 예배시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산하 경북 포항 P 교회 A목사(A는 특정 성을 의미하는 이니셜은 아님)는 예의 그 낭랑한 음성으로 신령한 말씀의 꼴을 사모하는 양들을 향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대체 어떤 말씀일까. 성도들의 잔뜩 부푼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A 목사는 열심히 준비한 설교를 혼신의 힘을 다해 풀어놓았다. 때론 예화나 어릴적 경험을 얘기하고, 성령이 수시로 부어주시는 영감에 따라 찬송도 불렀다.

성도들은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영감 어린 메시지에 영혼이 감격하고 믿음이 한층 자라나는 은혜를 맛보았다. 또 훌륭한 목사님을 교회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새삼 감사하는 마음까지 절로 우러났다.

P교회 교인들은 올 3월부터 5월말까지 3개월간 수요예배 때마다 A 목사가 1년간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한 설교를 들었다. A 목사가 1년간 준비한 설교는 모 교인이 당시 설교가 주일 예배 설교에 비해 훨씬 은혜가 넘쳤다고 회고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도들의 감동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크나큰 영혼의 상처로 바뀌고 말았다.

금년 5월 5일. P교회 모 집사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교인 몇 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담임 목사의 설교를 담은 녹음 테이프 5-6개와 서울 S교회 Y목사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설교집의 내용을 비교해 보다 담임 목사의 설교의 상당 부분이 Y목사의 책을 그저 줄줄 낭독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P교회 교인들이 예배 시간 담임 목사의 입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객으로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앉아 계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축복하시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라는 설교 내용을 Y목사의 책 104페이지에서 고스란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바 <설교표절>

더구나 A목사의 <설교표절>은 일반적인 표절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Y목사의 개인적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말했을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갖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셨다는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 설교집 105페이지는 유대의 귀한 음료수인 포도주가 마치 과거 우리나라의 식혜처럼 잔치를 연상시킨다는 것을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제가 어렸을 때는 믿는 가정에서 잔치를 할 때 식혜를 준비했습니다. 어쩌면 손님들이 많아 식혜가 동이 나면 대접하던 부인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A목사는 이 내용도 그대로 낭독했다. 물론 A목사 역시 Y목사와 똑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A목사가 성경해석이나 예화 혹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든지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으로 표절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A목사는 표절을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헤프닝까지 연출했다. 설교집 첫 장 '독생자의 영광을 보라'의 끝 부분은 두 줄 짜리 기도에 이어 다시 결론 부분이 서술돼 있다. Y목사는 '나사렛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메시지를 좀더 강조하기 위해 "주여,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 내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보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10줄 가량 본문 내용을 더 서술하고 첫 장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A목사는 기도와 서술 부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두 줄의 기도 부분 앞에서 교인들에게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 외에 나머지 서술 부분까지 모두 기도로 바꿔버린 채  아멘으로 끝을 냈다.

교인들에게 더욱 심각한 상처를 준 부분은 또 있다. A 목사는 요한복음 2장 23절에서 3장 7절까지 '당신은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성령의 인도로 찬송가 209장이 생각났다며 교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다.

'성령의 인도하심'

기독교인들에게 이처럼 무게를 갖고 있는 말도 드물다. 그러나 이 찬송은 바로 Y목사의 책에 나와 있는 것이다. 결국 A목사는 책의 내용에 있는 것을 성령의 인도로 생각나게 했다고 말한 셈이다.

P교회는 담임목사가 1년간 준비했다는 설교가 설교를 잘 하기로 유명한 다른 교회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판명되면서 심각한 갈등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5월부터 이 문제가 교회 안팎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급기야 P교회 당회는 A목사의 회개와 영성훈련을 위해 기도원에 가도록 권고했다.

한편 A목사의 설교 표절 사실에 대한 Y목사의 반응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당초 Y목사는 A목사를 잘 아는 부 목사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듣고 6월 3일 P교회 문제를 설교 시간에 언급했다. 비록 교회와 목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P교회 교인들이라면 즉각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 문제라는 사실을 알만한 설교였다.

이때 설교 제목이 '비판하지 말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Y목사는 A목사를 간접적으로 옹호했다. 즉 A목사의 설교가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쳤다면 그렇게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Y목사와 한 차례 직접 대면하고 두 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던 모 집사에 따르면 Y목사는 처음과는 달리 A목사가 심각한 잘못을 했다고 보는 쪽으로 시각에 변화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지난 5월부터 담임 목사 설교 표절 문제로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한 P교회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월 23일 열린 정책 당회에서 설교표절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해 A목사는 궁지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상태다.

당회 모 선임 장로는

"부임한지 3년도 안된 위임목사를 나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설교집을 참고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며 A목사의 처지를 두둔하고 있다.

그러나 당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A목사의 설교표절 행위를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A목사에 대한 비난의 핵심은 '설교를 무차별로 표절할 만큼의 영성과 도덕성을 가진 목회자라면 더 이상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모 집사는

"담임 목사는 설교를 서슴없이 표절할 만큼 빈약한 영성과 도덕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비난하고

"성도들에게 그 정도 상처를 주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목회자의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실제로 담임목사 퇴진을 요구하는 교인들은 23명에 이른다. 담임 목사의 권위가 무척 신성시되는 보수 교회에서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는 숫자다.  

그러나 비록 A목사가 실수(?)를 했을 망정 일단 정책 당회에서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 이상 P교회 내에서 여전히 그의 지위를 위협할 존재는 없다. 총회나 노회에서 '설교표절'에 대해 문제를 삼은 전례도 없으며, 교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조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 퇴진을 요구하는 23명의 교인들과 침묵하는 가운데 심한 영적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교인들의 가슴앓이는 A목사가 통렬한 회개 이후 진정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앞으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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