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심을 우린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지경을 넓혀달라는 비전있는 기도를 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과, 더 큰 비전을 향해 달려나가야 함이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그 책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야베스의 기도문이 주기도문을 앞지를 정도가 되어가는 현실에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지금까지 복을 받지 못한 이유가 "야베스의 기도"를 하지 않아서 인 것처럼 되었고, 사람들은 마침내, 열려라 참깨! 주문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책은 단기간 사람으로 열심을 내게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그리스도인의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실망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 실망은 앞의 열심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더 깊은 심연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 책의 저자도 그러한 문제가 일어날 것에 대해 예상하고는 추락하는 것 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도 자체가 야베스의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기도로 하는데 무리가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윌킨슨은 놀랍게도 나의 지경이라는 말에 하나님 나라를 포함해서 설명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영적인 기도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를 "기복신앙"이니 하는 인상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의 위험은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의 본질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도 단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는 야베스의 기도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경우, 그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의미로 받아들임으로 , 오히려 큰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동산을,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을,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의 확장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삶의 목적은 사라지고, 단지 내가 가지고자하는 것을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이 전락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딤전 6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라는 말씀이나

히 13 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라는 말씀에 대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책을 읽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이미지와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을 받으려면, 야베스의 기도를 하는 것 보다는
주기도문이 훨씬 낫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리라"(마6:33)는 주님의 말씀과 빌 4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야베스의 기도 매력을 맛본 사람은 주기도문이 시들해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 책의 위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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