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대신 청빈한 삶으로 세상을 일깨운 떼제공동체의 로제 수사가 피살됐다. ⓒAteliers et Presses de Taize
 프랑스 남동부 리용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시골마을 조그만 언덕위에 떼제공동체가 있다. 그 떼제 언덕에서 신앙 공동체를 일구고 평생을 청빈과 평화를 노래하며 헌신한 로제 수사가 지난 8월16일 어느 30대 루마니아 여인에게 피습을 받아 목에 자상을 입고 죽임을 당했다. 겸비와 평화를 삶으로 가르치면서 세계의 젊은 영혼들을 불러 말과 가르침이 아닌, 자율과 묵상과 겸비의 영성을 가르쳤던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2002년 부활절, 내가 떼제를 찾았을 때 그곳에서 나는 옛날 독일 유학시절에 만났던 목사님과 WCC 총무를 역임한 필립 포터 박사, 그리고 독일교회 감독인 그의 부인을 만나 환담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미 홀로 서서 걷기도 어려워하는 로제 수사를 보았다. 그는 하루에 세 번 모이는 기도회에 젊은 수사의 부축을 받으며 빠짐없이 나와 다른 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의자가 없는 바닥에 주저앉아 진지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떼제 언덕의 수사들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순명의 길을 걸으며, 신도들의 헌금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노동하여 삶을 꾸려나간다. 그곳은 단순, 청빈, 겸비의 삶을 가르치는 곳이다.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지쳐 찾아온 이들이 그곳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이 짊어지고 살아온 짐이 바로 자신의 단순하지 못함과 청빈한 마음가짐의 결핍과 겸비를 잊은 데에서 온 것임을 깨닫는 모습을 나는 그곳에서 보았다.

떼제의 수사들은 말과 이론으로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가톨릭교회의 미사나 성례도 없고 강론도 없다. 붉은 빛이 감도는 성전의 전면에 켜진 촛불 사이에 세워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조용히 떼제의 송가를 부르며, 자신을 성찰하고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 자리에서 참여자들은 철저히 주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고백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리스도 안에서 감격하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홀로의 고백이 아니라 함께하는 고백이다. 그 고백들은 다름 아닌 떼제의 노래들이다. 그것은 마음을 흩어 놓거나 자신의 정갈한 의식을 어지럽히는 현란한 현대음악도 아니었다. 간혹 조용한 기타소리에 맞춘 하이테너나 소프라노의 선창에 이어지는 참여자들의 합창은 2천여 젊은이들의 가슴을 하나로 묶어 서로의 영혼 깊은 곳까지 울리게 하였다.

그곳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는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침묵을 약속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침묵을 약속하고 일주일을 명상과 침묵으로 그들과 함께 보냈다. 먹는 것도 초라한 빵 한 개와 보잘것없는 사과 한 개, 코코아 한 잔이 전부였다. 떼제 언덕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들에서 일하던 수사들도, 성경을 읽고 있던 수행자도, 나이 많은 노사제도 조용히 십자가 촛불 앞에 모여든다. 그들은 여러 나라의 성경을 자기 언어로 읽고 함께 찬송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함께 긴 침묵의 기도를 드린다.

나는 떼제에서 교회의 순결을 더럽히는 '정치'와 성직자를 타락시키는 '권위', 그리고 공적주의에 사로잡힌 '대형'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배웠다. 로제 수사는 그 세 가지를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남루한 떼제 언덕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참된 기독교적 영성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였다. 매주 수천 명이 오가는 떼제는 조금도 화려하지 않으며, 풍요롭지도 않고, 오만을 부리는 자들이 없다.

내가 만난 한 독일 목사는 부활절 휴가 때마다 떼제를 찾는다고 하였다. 무수한 젊은이들이 그곳을 찾아가고, 또 휴가 때마다 자신들의 영성적 고향처럼 떼제를 찾는 이유는 그들이 기존 교회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 순결한 영혼과 부끄러움 없는 청빈, 그리고 부유함의 유혹에 한 눈 팔지 않는 정신이 떼제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구별 없이 초대받으며, 찾아갈 수 있는 열린 영성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로제 수사는 그런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오만함 없이 헌신하였다.

로제 수사의 죽음, 선한 삶을 살아가던 한 수사, 90세가 되어 홀로 설수도 없는 그 노수사를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삶에는 아이러니들이 많이 있다. 선한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고난을 겪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18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떼제의 새벽시간, 아침 기도회를 알리던 그 떼제의 종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떼제 언덕을 온통 감싸 안던 그 맑은 종소리를 나는 이따금 그리워한다.

무수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영성을 가르치고 맑고 투명한 삶의 모범을 보이던 그가 죽임을 당했다. 많은 이들의 영적인 스승이었던 그가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정신세계의 커다란 상실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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