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아 교회가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감격으로 눈물을 적셨다. 봄소식이 가장 빨리 온다는 통영, 햇살이 비늘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한 통영시민회관엔 이 도시의 한 교회가 마련한 공연행사를 보기 위해 청중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모였다. 겨우(?) 250명 남짓 되는 이 교회 성도들이, 어린 꼬마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어울려 준비한 공연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린이처럼 찬양에 맞춰 율동을 하고, 청년들은 그들다운 젊은 몸짓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들은 모자를 이용한 모션으로 청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향수'란 대중가요도 멋지게 불렀다. 어머니들은 주방장 차림으로 나와 그 유명한 '난타' 공연을 재현했다. 칼과 물바가지, 물통, 프라이팬으로 어우러진 한 바탕 리듬풀이는 보는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마무리가 좋았다. 온 성도들이 세계 각 국의 민속복장 차림으로 퍼레이드를 펼쳤다. 열방으로 나아가는 선교의 의지를 한껏 담아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를 노래했다. 그들의 신앙고백이었고 청중을 향한 호소이기도 했다. 여기 저기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교회는 이렇게 기쁜 곳이며, 어린이와 노인이 따로 없이 모두가 하나되어 젊은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오해해 온 일그러진 교회얼굴을 잊고 다시 교회의 희망을 새겨달라는 일종의 자기 자리 매김이었다.

통영 열방교회(www-allnations.org, 김종원 목사). 설립한 지 꼭 1년 된 교회지만 성도들 마음엔 100년의 역사가 그늘처럼 드리워 있다. 지난 수년 동안 교회답지 않은 분쟁의 아픔을 겪은 뒤 분립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예식장 한 층을 세 얻어 시작한 열방교회는 그러나 100년의 전통이 가져다 준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100년을 내다봤다.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신앙을 처음 갖던 그 시간으로, 또 교회가 처음 열리던 때의 순수함으로….


▲예배가 끝나면 교회는 카페가 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열방교회엔 주일이 따로 없다. 예식장을 개조한 예배당은 예배시간을 제외하면 카페로 바뀐다. 교회에 가면 언제나 보고싶은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로비에 설치된 자판기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라며 자랑한다. 누구와 마주하든 이 커피를 대접한다. 손님에겐 "우리 교회는 성령 다음으로 커피가 충만하다"며 커피를 권한다. 저녁때가 되면 누
군가 식당에서 밥을 짓고, 아무나 내 집처럼 식탁 앞에 앉아선 "잘 먹겠습니다"는 한 마디로 밥값을 치르면 된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도 열방교회에선 따뜻하고 포근하다.

열방교회 1년은 또 다른 교회문화에 적응해 온 시간들이다. 언제나 대접받기에 익숙했던 어른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라며 젊은이들을 치세우고, 싸우고 꺾어야 할 의식을 가진 어른들만 보아 온 젊은이들은 "또 한 분의 부모님"이 된 어른들을 존경하기에 이른다.

목사와 장로의 삐걱대던 관계도 새롭게 정립되어 교회운영을 위한 중요한 대화까지 이 '로비카페'의 테이블에서 논의하고 의견을 맞춘다. 그 자리에 청년이 끼기도 하지만 도리어 그들은 신앙 선배들의 그 순수한 믿음과 헌신을 배우며, 이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교회가 회복해야 할 영적 질서도 잡아간다.

이런 기반 위에서 열방교회는 축제문화를 일군다. 2월 교회설립을 기념해서 마련하는 시민초청 '열방축제'로부터 5월의 '가정축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감사축제', 섬김과 복음전도의 의미가 돋보이는 '성탄축제' 등이 그것이다. 절기에 맞춰 그들은 축제를 준비한다. 삶과 축제가 따로 있지 않고, 삶이 곧 축제로 이어지며, 축제는 삶의 연장선이 된다. 어쩌면 그것이 교회생활일 수도 있다. 성도의 삶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며, 교회는 가정과 분리되지 않고, 성도들의 삶의 현장 역시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열방교회 축제문화는 그래서 그 자체로 기쁨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김종원 목사는 교회의 이런 코이노니아(교제) 현상을 교회 건물과도 연결시킨다.

"주일예배엔 로비까지 의자를 놓아야 모두가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 때문에 우리는 하나됨의 기쁨을 더욱 맛본다. 과거 우리 교회는 거대한 건물에도 있어 봤다. 그러나 그 때 그 건물을 다시 짓고자 하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건물을 얻고 사람을 잃어버리는 오류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비의 이 원탁이 좋다. 노소와 남녀, 목사와 성도들을 불문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한다. 적어도 하나님의 교회에 담긴 에클레시아(불러모음)와 코이노니아의 진정한 의미를 의식 깊숙이 체험하기까지는 결코 우리에게 교회건물을 주시지 않으실 것이란 사실을."

열방교회엔 '부목사'가 없다. 목사면 목사지 담임목사 부목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에서다. 사례비도 같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더 있으면 그만큼 수당을 받을 뿐이다. 공식 당회에도 함께 참여하며 주일예배 설교도 함께 한다. 담임목사 한 사람만 의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말할 정도다.

행사 때마다 의례적으로 넣었던 담임목사를 위한 '1부예배'도 사라졌다. 한 사람에게 치우쳐진 교회 권력체계를 의도적으로 허무는 과정인 셈이다.

이런 것이 없더라도 담임목사란 직함 하나만으로 벽이 되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화이고 보면 김종원 목사의 이런 목회방침들은 그의 말처럼 "담임목사의 자리를 백지화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그러고 나면 교회는 비로소 기쁨을 회복하고 생명다움을 맛본다. 열방교회는 바로 그 모델인 셈이다.

▲김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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