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은현교회 김정명 목사(53)는 82년 은현교회에 부임한 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장기수 영치금 후원, 베트남,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등 국외 어린이를 비롯해 최근에는 북한 어린이와 여수지역 결식아동 돕기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김 목사는 지난 97년 이름도 모르는 처녀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어 줘 생명을 구하고 99년 말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거둬 자식으로 삼았다. 김 목사는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청빈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하루에 많이 먹어야 두 끼니 정도 떼우고는 음식이든 물이든 낭비하지 않는 자린고비 같은 김 목사. 오늘도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성도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소리 높여 외치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신앙인의 삶을 살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그의 소박한 소망과 그가 꿈꾸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들어 본다.  

- 우리나라를 부패공화국이라 규정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 어떻게 희망이 있겠습니까? 정치인들은 국가의 장래는 상관없이 자기 당의 유익만을 가지고 엉뚱한 짓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직자들이 진실합니까? 경제가 이 모양이 됐는데 기업인들이 책임을 느끼고 바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대학에만 넣으려고 하지 진정한 인격자를 가르칩니까? 그것도 아니면 의료인들이 병든 사람을 생각합니까? 법률인들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합니까?

그럼 종교인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스님들은 각목 가지고 싸우고 기독교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각 교단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단도 "나라가 어려운데 기도하고 회개합시다"라는 소리는 없고 오히려 '6당 5락'이라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선거하면서 6억을 쓰면 당선되고 5억을 쓰면 떨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정치권이 아닌 목사님들의 선거과정에서 나온 소리였습니다. 이 나라 구석구석이 부정과 부패로 만연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느헤미야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적국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성실한 삶으로 임금을 섬기는 사람으로 출세해 고국(예루살렘)의 총독에 임명됐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권력에 취하지 않고 민족이 저지른 죄를 대신해 눈물의 회개를 했습니다.

지금 사회 전반에는 서로 정죄하고 책임을 미룰 뿐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민족의 죄를 대신해 눈물로 회개한 느헤미야의 모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경건하고 겸손하며 진실한 삶과 내 것이 아닌 죄를 내 것이라고 시인하면서 회개할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로 만연했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습니다. 작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선 내가 지킬 수 있는 질서는 지키고 정직할 수 있는 만큼 정직하고 내가 섬길 수 있는 대로 섬기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절망이 다시 소망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 군대 시절 부정행위를 고백하셨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전도사였던 당시 군에 입대해 통신중대 회계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상관들이 기름을 빼돌려 술을 사먹는 부정한 모습을 보고도 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고생이 심한 부대로 자청해 옮겼지만 부정행위를 묵인한 죄도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빼돌린 기름을 현재 시가로 환산해보니 대략 30여 만원이 됐습니다. 그래서 내용과 함께 국방부에 수표를 부쳤는데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며 반려됐습니다. 비록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부정부패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보냈는데 아쉽습니다.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에 무감각하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 세례 요한의 '독사의 자식들'이란 말과 '가짜들'이란 말을 자주 하시는데 교인들이 싫어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분에 넘칠 정도 풍요로운 물질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의 축복을 저주로 바꿔 놓고 있습니다. 곳곳의 러브호텔에서는 음란한 행위들이 벌어지고 퇴폐, 부정부패, 향락이 극에 달해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훌륭한 인격을 갖춘 남자와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컷과 암컷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성(性)만 누리는 짐승화가 되면서 진노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말세적 현상이 아무렇지 않게 일고 있는 세상 앞에 신앙인들 만큼은 세례 요한의 말을 회개로 삼아야 하는데 귀를 막고 자신과 가족의 축복만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입으로 주여!주여!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면서, 거짓된 나무는 도끼에 찍혀져 불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거짓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은 기독교인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비판하고 계십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참 슬픈 일은 세례 요한의 말에 기독교인이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귀를 막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땅에 기독교인이 1천만명을 넘어섰지만 사랑하지 않고, 나누며 살지 않고, 거짓말하고, 부정하게 삽니다. 도리어 세례 요한의 말대로 사는 사람들이 구박받으며 살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랑의 수고와 담 쌓은 채 '편안'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구할 때 외면하는 것과 착한 일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주고 부정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면 내 영혼이 편안하고 자족하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 목회자의 부자 세습 문제와 기독교방송 등의 파행으로 기독교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습니다.

"성경에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져 짓밟힌다고 했습니다. 교인들 뿐만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의 맛을 잃어버리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외쳐도 그 속에 예수의 생명과 진리가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에 휩쓸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껍데기는 예수로 칠해졌는데 속에는 자기 중심적인 욕망에 회칠됐기 때문에 물의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치관으로 변화되지 않고 기도와 회개를 게을리하면 목회자 또한 욕망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를 비추어보면 저는 목사 자격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저를 가만히 살펴보면 저 또한 회칠한 무덤입니다. 겉은 회칠해서 그럴 듯 하지만 속에는 썩은 시체가 들어있는 것처럼, 겉은 목사로 그럴듯한데 속은 야비하고 응큼하고 치사한 것, 시기, 질투 등 너무나 더러운 것이 많습니다."

- 청빈한 목사로 존경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빨리 허물을 고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우리 교회가 잡음이 일지 않는 것도 저의 잘못을 빨리 회개하고 뉘우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랄 것 없이 속에 욕망과 욕심이 들어가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 용어에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판승은 수도하는 스님을, 사판승은 사찰의 재산을 관리하는 스님을 가리킵니다. 사판승들의 재산을 둘러싼 마찰이 일었지만 그래도 불교계에는 성철스님처럼 이판승의 계셨습니다. 또한 천주교에도 이판승에 속하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사판승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60세에 조기 은퇴할 생각입니다. 은퇴한 뒤에 이판승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비뽑기로 교역자를 정한 뒤 물러날 생각입니다."

(지난해 '기독교하나님의 성회' 부총회장을 지낸 김 목사는 총회장 선출을 둘러싼 비리를 없애기 위해 자신이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포하면서 제비뽑기 방식에 의한 총회장 선출을 주장해 동의를 이끌어냈으나 얼마 후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 은현교회를 독특한 교회라고 합니다.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우리 교회가 한국의 모델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역자와 교인들에게 무소유하는 삶을 살기를 요구합니다.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지 않고 죽으셨던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정욕과 욕심을 못박아 예수님과 함께 죽어 부활과 영광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가고자 합니다. 쓸쓸한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말못할 아픔에 울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을 지역민들과 함께 사용하며 청소년들에게 놀이공간과 찬양 마당을 제공해 주는 일과 헌혈운동, 신장기증, 유산 안 물려주기, 무소유 운동 등 우리의 몸과 물질까지 나누는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시대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민주화 통일, 그리고 환경보전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구라파 교회의 경우 이웃 돕는 일과 사회문제에 소홀한 채 예배당을 크게 짓는 일에 치중하다 국민들에게 외면 당한 채 관광명소로 전락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한국교회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교회재정이 어려운 걸로 아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웃 돕는 일을 하십니까?

"현재 예배당을 여수시로부터 매입해 등기하는 과정에서 슬픈 사건(재산을 담당한 장로가 부지를 팔아 넘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해 대지를 다시 매입하면서 부채가 발생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은 예배당 짓고 교회만 살찌는데 있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는 매월 첫 날을 금식일로 정했습니다. 그 금식헌금은 전액 북한 어린이 돕기와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베트남 양민 유족돕기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부활절과 성탄절 헌금은 양심수 영치금(장기수 송환으로 장기수 후원은 중단됐다)으로 사용하고 또 헌금의 일정액을 구제헌금으로 떼어 내 결식아동과 실직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방금 말씀하신 민주화와 통일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도 양심수가 99명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민주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해 김대중대통령이 6·15 선언과 이산가족 만남 등의 큰 수확을 얻어 통일의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 베트남 사죄방문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 양민학살을 알고 난 뒤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 역시 일본에게 위안부문제를 항의하면서도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뿐만 입니까. 아직도 광주민중학살에 대해서도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 회개해야 되는데 안하고 있으니 나라도 하자, 그래서 베트남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나라가 가난해 용병으로 갔으면 적당히 하고 왔어야 했는데 한국군은 잔인할 정도로 보복을 해 한국군을 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양민학살에 대한 저주는 성경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사울 임금의 양민학살한 징벌이 다음 임금인 다윗 시절에 내려 3년 동안 기근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서도 우리는 베트남 양민학살을 회개하고 특히, 한국에 온 베트남 사람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도 중동에서 땀흘리며 외화를 벌어들인 과거가 있습니다.

- 목사님 늦동이는 잘 크고 있습니까.

"예, 잘 먹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99년 말 강보에 싸인 사내아이가 김 목사의 집 앞에 버려졌다. 김 목사는 아이를 '시온'이라 이름짓고 아들로 삼았다.)

- 목사님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끝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올해 뿐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사랑, 정직, 질서를 중심에 놓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세 마디가 실현되면 아마 천국이 이뤄질 것입니다."  


김정명 목사는 전남 1948년 순천에서 출생해 여수YMCA 이사장, 광주전남인권선교위원회 부위원장, 교단 부총회장을 맡아왔으며 '하나님 눈치만 보며 삽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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