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일제 잔재는 4개 대학(고려대, 연세대, 서울대, 이화여대) 밖에 없는 것인가. 대학 설립자 및 초대 총장의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이 잇따라 제기됨에 따라 친일 청산 운동에 대한 자기 대학 점검과 대학간 연대가 절실해지고 있다.

▲ 대학가 친일 인사 동상들. ⓒ유뉴스 자료사진

<유뉴스> 조사 결과 15개 대학 설립자, 초대총장, 이사장 등 이미 역사적으로 그들의 친일행위가 밝혀졌음에도 동상·각종 기념관·학술상·기념상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친일파 99인>(민족문제연구소, 돌베개 1993), <청산하지 못한 역사>(민족문제연구소, 청년사 1994), '민족정기를세우는의원모임' 친일반민족 행위자 708인 선정(2002년 2월 28일) 등의 자료를 통해 대학 내 설립자 및 초대총장 등 대학 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을 알아봤다.

동상, 기념관, 학술상, 기념상 등 친일인사 기념사업 수두룩

현재 △중앙대(안성) 임영신 △성신여대 이숙종 △추계예대 황신덕 △박정희 △단국대 홍난파 △서울예대 유치진 △배상명 △박인덕 △서울여대 고황경 △김성수 △이화여대 김활란 △백낙준 △서울대 장발 △더불어 동상, 기념관, 장학금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동상으로는 성신여대 이숙종(호 운종)은 좌상, 추계예술대 황신덕은 전신상, 경북대 사범대 박정희는 안면 부조로, 단국대 홍난파는 흉상으로, 서울예전 유치진은 반신상, 상명대 배상명은 서울과 천안 양 캠퍼스 좌상으로, 인덕대 박인덕은 전신상이 대학본부 건물 근처 또는 학교 중앙에 자리 잡아 그 대학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 김성수 동상은 전국적으로 7개나 분포되어 있어 한국에서는 이순신, 이승복, 박정희 동상 다음으로 가장 많다. 김성수 동상은 고려대 본관 앞 외에 중앙고등학교(종로구 계동, 1966년), 경성방직(영등포 1978년), 전북 고창군 새마을 공원(1983년), 서울대공원(과천 1991년), 인촌기념관(1991년), 현 동아일보 사옥 옆 미디어센터 앞에 각각 놓여있다.

기념관으로는 중앙대 안성 캠퍼스 설립자 '임영신 기념관', 단국대 '난파 기념 음악관', 서울여대 고황경의 호를 본딴 '바롬 교육관', 성신여대 이숙종의 호를 딴 '운종관' 건물, 연세대 '유억겸 기념관', 상명대 배상명의 호를 본딴 '계당 기념관'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 단국대 난파 기념 음악관은 실제 단국대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경수 단국대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은 "홍난파와 단국대의 관련성은 없다. 단지 단국대 음악과 신설 당시 홍난파 유족들이 유품을 기증한 감사의 뜻으로 1984년 4월10일 홍난파 87회 생일에 맞춰 난파 기념 음악관이 건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단국대는 기념관 외 홍난파 얼굴상과 유가족이 기증한 연주 레코드 및 가곡집은 '난파 유품 기념 전시장'까지 만들어져 학생들의 관람도 이뤄지고 있다.

단국대에는 학교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홍난파 기념관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대학가를 넘나드는 전국적인 기념행사도 다수

설립자나 초대 총장의 호와 이름을 딴 장학금 명칭도 기념사업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여대 바롬 장학금, 상명여대 계당 장학금, 추계예술대 황신덕 장학금, 덕성여대 남해(송금선의 호) 장학금 등이 그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친일파 송금선에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여사로 학내 역사 바로 세우기에 성공한 덕성여대의 경우, 친일파 송금선의 호를 딴 '남해 장학금'이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는 "아마 학생들은 남해 장학금 이름의 의미도 잘 모르고 받고 있을 것"이라며 "하루 빨리 장학금 명칭 변경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에서 유일하게 친일파 송금선에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여사로 학내 역사 바로 세우기에 성공한 덕성여대. 사진은 차미리사 동상. ⓒ유뉴스 자료사진 

한편 고려대 김성수, 이화여대 김활란, 경북대 박정희 등은 각종 학술상·기념상으로 대학을 넘어 전국적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고 있다.

고려대 김성수의 경우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인촌상'이 교육·산업기술·언론출판·공공봉사·문학·학술 영역에 걸쳐 1997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이화여대 김활란 역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관으로 '김활란 여성 지도자 상'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5·16 기념재단에서 주최하는 '5·16 민족상'을 1966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이렇듯 대학 내 친일청산의 움직임은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으로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대학 구성원들간 활발한 토론을 전제로 한 다양한 방식의 대학 내 친일청산 과정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는 "동상을 비롯한 기념물은 사람의 업적을 보고, 사랑하며 존경하기 위해 제작되어 왔다"며 "이를 위해서는 인물에 대한 다방면적인 역사적 평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의 친일 인사 기념, 개탄할 일"

전북대는 올해로 60년째 학생회관 앞에 세워져 있었던 '친일비석'에 8월말까지 알림판을 설치하기로 학교본부와 합의했다. 이 비석은 전북대 근처에 있는 덕진공원 건설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비문에는 친일파 박기순과 일제의 일본관리(당시 전북도지사 하야시 시케이끼 등)들의 공적과 함께 '소화(昭和) 9년'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연호도 함께 새겨져 있어 지난 3년 전부터 지역 내 철거 요구가 빗발쳤었다.

지역시민 단체와 학생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전북대학교 본부는 비석 앞에 '전북대 내 비석을 세우게 된 이유'라는 제목과 비석에 거론된 친일 인물들의 친일행위를 담은 '알림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오영렬 전북대 총학생회장은 "학교측과 만나 알림판 설치시기를 더 당길 예정이며, 우선 학생들에게 충분히 알려낸 이후 철거에 대한 논의도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붙고 있는 대학가 일제잔재청산운동 ⓒ유뉴스 자료사진

배재대는 1992년 대학 내 이승만 동상을 학생들의 힘으로 철거에 성공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배재대 당국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배재대의 전신인 '배재학당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이승만 동상을 건립한 바 있다. 이에 학생들은 87년부터 몇 차례에 걸친 투쟁으로 결국 이승만 동상을 본관 앞에서 박물관으로 몰아냈다.

95년 배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이동수(배재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91학번)씨는 "친일청산 실패이자 독재자, 친미주의자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자는 대학 내 여론은 87년부터 있어 왔다"며 "당시 학생들은 4·19 기념 마라톤 대회를 하기 전 동상 앞에서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해 왔고, 실제 두 차례 정도 밧줄로 묶어 동상이 부서져 철거 위기에 놓여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 후 배재대학교 본부는 몇 차례 동상 복구를 했지만 학생들의 반발에 못이겨 끝내 본관 앞 동상을 박물관으로 옮기는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대학 내 친일인물에 대한 동상을 비롯한 기념사업에 대해 "친일행위가 백일하에 밝혀진 지금에도 또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학교와 기념사업회에서는 이들의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대학 내에서 무작정 철거보다 안내판 설치 등 학생들에게 알리는 사업이 선행된 후 학생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가 친일동상 · 기념관 · 장학금 현황
- 고려대 : 김성수(호 인촌) 동상
- 연세대 : 백낙준(호 용재) 동상, 용재관, 용재석좌교수 / 유억겸 기념관
- 이화여대 : 김활란 동상
- 서울대 : 장발 동상 (미대 앞) / 현제명 동상 (음대 앞)
- 경북대 : 사범대 건물 내 박정희 안면 부조
- 전북대 : 대학 앞 친일파 공적비
- 중앙대(안성) : 임영신 동상(좌상), 영신기념관(음대)
- 단국대 : 홍난파 흉상, 난파 기념 음악관
- 서울예대 : 유치진(호 동랑) 반신상, 동랑 청소년 연극제
- 추계예술대 : 황신덕 학교 입구 쪽 전신상, 황신덕 장학금
- 상명대 : 배상명(호 계당) 서울, 천안 좌상, 계당 기념관, 계당 장학금
- 인덕대 : 박인덕 전신상
- 덕성여대 : 송금선의 호 '남해 장학금'
- 서울여대 : 고황경(호 바롬) 바롬 교육관, 바롬 장학금
- 성신여대 : 이숙종(호 운종) 좌상, 운종관이라는 건물 이름, 운종 장학금

▶기념상 (시상명칭 / 시상기관 / 제정년도 / 시상분야)
- 동인문학상(김동인) / 조선일보 / 1955 / 소설
- 노산문학상(이은상) / 노산문학회 / 1976 / 시조, 국학연구
- 공초문학상(오상순) / 서울신문사 / 1993 /시
- 월탄문학상(박종화) / 동상운영위원회 / 1966 / 시
- 육당시조문학상(최남선) / 동상운영위원회 / 1985 / 시조
- 소천비평문학상(이헌구) / 동상운영위원회 / 1989 / 평론
- 팔봉비평문학상(김기진) / 한국일보사 / 1990 / 평론
- 조연현문학상(조연현) / 한국문인협회 / 1982 / 종합
- 이주홍아동문학상(이주홍) / 동상운영위원회 / 1981 / 아동문학
- 난파음악상(홍난파) / 난파기념사업회 / 1968 / 음악
- 동랑연극상(유치진) / 한국예술연구원 / 1977 / 연극
- 미당문학상 / 중앙일보사 / 2001 / 시
- 김활란 상 / 한국여성단체협의회 / 1999 / 여성운동

▶학술상 (시상명칭 / 시상기관 / 제정년도 / 시상분야)
- 용재상(백낙준) / 용재기념사업회 / 1994 / 학술
- 두계학술상(이병도) / 진단학회 / 1980 / 학술
- 하성학술상(이선근) / 하성학술상위원회 / 1985 / 학술

▶기타 (시상명칭 / 시상기관 / 제정년도 / 시상분야)
- 인촌상(김성수) / 인촌기념회·동아일보사 / 1987 / 교육,산업기술,언론출판,공공봉사,문학, 학술
- 5·16 민족상(박정희) / (재)5·16 민족상 / 1966 / 학술, 교육, 사회, 산업, 안전보장 부문

▶그 외 기념관
- 운보 미술관(김기창) /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 청마 문학관(유치환) / 경남 통영시 정량동 863-1번지
- 조두남 기념관 / 마산시 신포동 구항 근린공원 내(선구자 작곡가)

(이 기사는 <유뉴스>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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