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교회를 시발로 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오는 동안 조용기 목사는 한국개신교 성장의 상징이었다. 비록 한때는 이단으로 취급받으며 정통 개신교단으로부터 눈총을 받은 때도 있었지만, 한국의 대표적 장자교회라 할 수 있는 장로교단에서 인정을 받은 뒤부터 최근까지 거칠 것 없이 교회 성장의 가도를 달려 왔다.

70만 성도와 곳곳의 성전(?)을 세우며 양적 팽창을 거듭해온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수조원에 이르는 재산과 한해 1천7백억 원에 달하는 헌금 등 세계적으로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천문학적인 교회 재정과 물질적 축복을 자랑하고 있다.

우선 교회사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보면 그리 길지 않은 한국개신교 역사상 대단한 부흥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개신교인이라면 교파와 교단을 떠나서 자랑과 긍지가 생길 만도 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절대적 공헌자는 누가 뭐라 해도 조용기 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혹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필연적으로 부흥한 모델이지 결코 인간 조용기에 의해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의 결과물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과는 성경적으로 나타나고, 인간적이라면 결과는 인간의 '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라면 수조 원의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고 감히 성경을 기준으로 단언한다. 이는 연보의 목적이 과부와 고아를 구제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사명에 물질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라면, 현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수조 원의 재산은커녕 허름한 예배당만으로도 만족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가 정녕 주의 종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양떼를 이리로부터 잘 보호하고 천국까지 그들을 인도할 책임이 있는 목자라면, 자신의 육신적 아들을 위해 교회 재산인 교회 건물과 교육관, CCMM 빌딩 등을 담보로 1천억 원에 가까운 돈을 대출해 줄 수 없을 뿐더러, 조용기 목사 부인을 한세대학교 총장과 베데스다 대학의 부이사장 그리고 조용기 목사 동생, 장남 조희준을 거쳐 사돈인 노승숙씨를 <국민일보> 사장 등에 앉힐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 목사의 누이들까지 순복음교회 장례 사업과 기도원의 식품 사업 등에 관여하고, 매제까지 교회의 총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엘림복지원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등 족벌 경영을 통해 교회를 일가 친척들의 먹고 살기 위한 터전으로 삶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애굽 왕자의 지위와 권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양에서 40년간을 고생했음에도 정작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는 그 영광을 뒤로 한 채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고 죽었다(신 34:1~12). 비록 모세가 므리바에서 반석을 두 번 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아니하였던(신 32:51) 모세의 잘못과 실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육신적 영화를 버리고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모세의 공적을 생각해 본다면, 이처럼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아무 불평 없이 여호수아를 안수하고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소개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물끄러미 바라본 뒤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죽었다.

2005년 2월1일자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장로회장 명의로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대한 답변으로 보낸 문서를 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당회장 친인척의 특혜를 없애겠다고 개혁의 의지를 밝힌 것 같다. 지금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가 비리를 저질렀거나 아니면 장로회가 개점휴업 상태였다면 어느 정도 개혁의 의지에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장로회 공문에 신빙성이 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교회 비리의 핵심은 장로회가 아니라 바로 조용기 목사라는 점이다. 조용기 목사는 과거 교회 재정에 대한 투명성과 교회 정치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장로들을 신본주의 운운하며 출교 조치한 전력도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부흥과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모세와 같은 사역자들이 없었다. 느보산에서 죽지 못한 70세의 사역자는 느보산에 오르기 싫어 정년 연장까지 시도했었다. 비록 지금은 그것을 포기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느보산에서 죽지 못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조용기 목사는 더 늦기 전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회귀해 다시 느보산에 서야 한다.

그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은퇴를 앞두고 배워야 한다. 조 목사가 지금이라도 주의 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날 조 목사와 가족으로 인해 얼룩진 교회의 과거와 현재가 남아 있거나 진행 중이라면 이제 자기의 왕국을 허물고 모든 것을 주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개인의 교회로 삼아 평생의 수고와 헌신을 헛된 것으로 만들거나 바퀴달린 십자가와 이벤트성 회개를 통해 자신과 교회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자기를 부인함으로 큰 사람이 되었다. 이제라도 조용기 목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느보산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 죽을 자리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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