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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현장 '스리랑카'에서 만난 예수
(스리랑카를 다녀온 의료인의 방문기) 아픔과 상처에서 함께 고통 받는 예수
  • 김신곤 (k50367@korea.ac.kr)
  • 승인 2005.02.18 14:15

'긍휼'을 뜻하는 영어단어 'compassion'은 라틴어 파티(pati)와 쿰(cum)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두 단어를 합치면 '함께 고통받다'의 의미가 된다. 긍휼은 우리가 상처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고통이 있는 장소로 들어가라고, 깨어진 아픔과 두려움, 혼돈과 고뇌를 함께 나누라고 촉구한다. 긍휼은 우리에게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울부짖고,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도전한다."(헨리 나우엔의「긍휼」중에서)

영성이 깊어질수록 영성의 방향은 '자신'으로부터 '타자'로 향하게 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의 시선은 이웃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웃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 된다.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고통이 성부 하나님의 아픔이자, 성령님의 탄식이 되었듯이 성삼위 일체의 신비는 그들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속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웃이 내가 되고 내가 곧 이웃이 되는 것이다.

내가 스리랑카에 간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과 '함께 고통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영성의 수준은 먼 이웃 땅에서 벌어진 비극을 '슬프고 안 된 일' 정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말 나의 고통이지는 않았다. 이게 아닌데?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으면 했다. 그러자면 나처럼 영성이 일천한 사람의 경우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고대의료원 차원에서 구호팀이 꾸려졌을 때 가고 싶었지만 매번 80여 명에 이르는 외래 진료를 정리할 도리가 없었다. 방법은 구정 연휴를 활용하는 것인데, 마침 그 기간 동안 사역을 준비하고 있던 두 팀이 내게 소개됐다. 한 팀은 많이 준비된 팀처럼 보였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으로 떠나는데, 의사들을 포함해 총 100여 명으로 꾸려진 대형 팀이었다. 반면 다른 한 팀은 '소록밀알회'라는 소록도 나병환자를 섬기는 모임에서 꾸려진 작은 팀이었다.

이 팀은 스리랑카로 향할 예정인데, 10여 명의 팀원에 두 명의 의사만이 준비된 상태라고 했다. 기왕이면 확실하게 고생하자는 생각이었기에 후자에 마음이 갔다. 작은 팀이 오히려 내게나 팀 자체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됐다. 그래서 스리랑카로 출발하기 1주일 전 나의 행로가 결정됐다. 전혀 모르는 구성원들과 낯선 곳에서의 6일을 함께 할 일이었지만, 기대가 되었다.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팀에서는 내과 의사를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찾지 못하여 거의 포기하고 있을 즈음, 마침 내가 연결이 된 것이다.

사역의 현장, 바띠깔로아

스리랑카의 역사는 식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05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스리랑카를 지배했다. 1948년 독립할 때까지 무려 440여 년이 식민 지배였다. 그 이후 최근까지 20여 년 동안 죽고 죽이는 민족 분쟁에 의해 또 다른 상처가 아로새겨진 나라기도 하다. 내전으로 인해 6만 5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쓰나미로 인해 정부 통계로만 무려 3만 974명이 사망했다. 쓰나미라는 재앙은 이처럼 참혹했다.

우리의 사역지로 선정된 바띠깔로아는 수도인 콜롬보에서 버스로 8시간 떨어진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반군을 지지하는 타밀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바띠깔로아에 있는 한 마을은 전체 주민 수가 1500명 정도였는데, 이번 쓰나미로 무려 1000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살아남은 사람이 오히려 의외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바띠깔로아에 마련된 난민촌에서 우리는 크게 네 가지 사역을 했다.

의료사역과 영상사역, 이미용 사역, 그리고 어린이 사역이었다. 팀원들은 이전에 서로 잘 모르던 사람들이 다수였지만, 쓰나미의 희생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이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자 했던 공통의 목표 앞에 함께 어우러졌다. 밧모섬 선교회라는 영상선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팀원들은 준비해 간 영상장비로 난민촌에 간이 영화관을 만들어 '이집트의 왕자'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은 좋은 영화를 상영해 주었다. 미용학원을 운영하는 형제는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달란트를 난민촌에 쏟아 부었다. 무엇보다도 인기가 많은 팀은 어린이 사역팀이었다. 재미있는 얼굴 분장과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모양의 풍선은 잠시나마 난민촌에 위로와 기쁨을 주었다.

고통의 현장에서 함께 고통당하신 예수

사역 첫날 저녁 우리는 반군 측에서 쓰나미 직후에 촬영한 비디오를 보았다. 20여 분의 비디오는 쓰나미의 참혹한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죽어서 몸이 퉁퉁 불은 채로 물에 둥둥 떠 있는 아이, 떼죽음을 당한 아이들, 엄마 품에 안겨 죽은 아이…. 어른들은 그렇다 치자. 이 천진한 아이들의 죽음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울고 통곡했다.

어느 대형교회의 목사님은 쓰나미의 재앙은 이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쓰나미의 재앙 앞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단다. 신실한 스리랑카 그리스도인들도 죽었다고 한다. 스리랑카로 떠나기 전 요한복음 큐티를 하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요한복음 9장 1절에서 3절에 나오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 대한 말씀이었다. 큐티 내용을 소개한다.

"본문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나온다. 제자들의 관심은 소경이라는 비극의 원인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하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의 사고방식은 이랬다. 비극은 비극의 주인공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눅 13:1~5).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이 일이 죽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라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살아있음이 상대적으로 죄없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자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신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어떤 깨달음이 있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이 죄가 많네 적네 하며 사건의 원인을 따지고 스스로에게 위안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산자들에게 그 사건의 의미를 묻고 계신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왜'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예수님의 시선은 '의미'라는 미래를 지향한다.

쓰나미라는 대재앙을 두고 말들이 많다. 누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하고 누구는 아니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과 누가복음의 기사에 기대어 보자면 그들의 죄 탓에 발생한 심판이라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목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이룩한 찬란한 문명도 잠정적이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시적인 것에 목숨 걸지 말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서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회개는 이웃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 위로해 주고 함께 아파해 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정죄하는 신앙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쓰나미 재앙을 굳이 심판이라 한다면, 그것은 쓰나미 발생지역의 이교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류 전체에 대한 비판과 심판이라 할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재난 지역에 선교의 문이 열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마저도 선함으로 바꾸시는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분이 선교를 위해 친히 악을 의도하셨을 리 만무하다고 나는 믿는다.

인류 역사의 모든 비극이 하나님의 징벌이나 심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하나님의 구속사와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일은 하나님이 허락은 하셨으되 친히 의도하신 일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모든 비극과 재앙에는 하나님의 숨은 뜻이 담겨있다. 그 뜻을 발견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이 비극과 재난의 원인을 내 짧은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이것이다. 바로 그 고통의 현장에서 예수 역시 고통 받고 계셨다는 점이다. 재난 현장의 고통과 고난은 엄청나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가 이미 2000년 이 고난을 체휼하셨으며, 오늘도 이 고통의 현장에서 동일하게 고통 받으며 함께 울고 계신다는 점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한 구원의 사건임과 동시에 인간의 고난과 고통의 역사에 하나님 스스로 고난 받음으로 응답하신 사건이다. 그 예수가 오늘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런데 똑같은 성경을 읽는 우리가 왜 서로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일까? 앤드류 커크의 다음 말이 적절한 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식은 이론적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순종을 통해서 얻어진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행동을 거절하고 불순종할 때, 결국 성경본문을 바로 볼 수 있는 해석학적 열쇠를 상실하고 왜곡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쓰나미의 재앙을 이교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나는 고통의 현장에 직접 가보시길 권면한다. 그들과 함께 고통 받고 울어 보시기를…. 하나님은 분명 다른 음성을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있던 의문 중 하나는 그런 고통의 현장에서도 그들이 잃지 않고 있는 미소였다. 어린아이들은 밝은 눈매는 또 어떤가? 우리가 미소를 지으면 그들은 반드시 미소로 화답했다. 우리의 미소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거부당한 적이 없었다. 왜일까? 민족성과 기질의 차이일까?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그들의 미소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큐티를 통해 주신 말씀

우리들은 새벽 큐티로 하루의 사역을 시작하였고, 서로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하루를 정리했다. 이 시간은 참으로 은혜의 시간이었다.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다. 이 시간이 있었기에 다양한 배경과 신앙을 가지고 모인,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은혜로운 사역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많이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졌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역 첫날의 큐티는 이사야 42장 1~13 말씀으로 했다. 우리를 지명하여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이방을 구하며 어려운 정황에 있는 이들(소경, 갇힌 자, 흑암에 처한 자)을 섬기기 위함이 아닌가?(1, 6~7)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은 외치지 아니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지 아니하는 것이다(2).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며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것이다(3).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였다. 어설프게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스리랑카 신문을 통해 소개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는 '그들은 예수를 얘기하면서 내게 빵은 주지 않았다'는 지역민들의 불만과 불평을 기사화하고 있었다.

복음의 전파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하고 온유한 방식이어야 한다. 꼭 말일 필요도 없다. 때에 따라 복음의 모양은 다르게 전파될 수 있다. 여리고 성을 올라가다 강도만난 이에게 필요한 복음은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한 고통이니 달게 받고 하나님을 믿어라'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복음 때문에 왔는가? 아니면 사랑 때문에 왔는가? 둘 다다. 그러나 사랑 자체가 그들에겐 복음이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했다.

사역 마지막 날 큐티는 이사야 60장 1~22절 말씀이었다. 예루살렘이 받을 영광에 대한 말씀이었다. 물론 이때 예루살렘은 장차 오실 예수의 예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스리랑카에 임할 영광을 바라보고 기도했다. 영광은 반드시 고난을 경과한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받았으나(15)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17) 말씀을 붙잡았다.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던 예수가 이 고통의 현장의 고난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실 것이다.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도 큰 위로가 되실 것이다. 고난 후 부활하여 예수가 누린 영광이 스리랑카에 임하길 기도했다.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치길(20), 이젠 일어나 빛을 발하는(1) 나라가 되길 기도했다. 고난의 역사도 내란의 상처도 이 재앙 후에는 다 씻겨나가길 간절히 소망했다.

찾아온 위기

사역 첫날 바띠깔로아에서는 큰 사건이 터졌다. 반군의 동남부 지역 치안 책임자와 반군에 협조하던 전직 국회의원이 총격을 받고 피살당한 것이다. 반군과 타밀족의 움직임이 걱정되던 차에 사역 둘째날 저녁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내일부터 5일간 애도기간인데, 이 기간 동안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교통수단이 자발적으로 운행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움직일 수 없으면 사역 자체가 좌초될 위기였다. 게다가 애도기간 중 흥분한 반군에 의해 어떤 보복 공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역은 반군에 협조하는 타밀족의 거주지역이지만 군과 경찰은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형세였다.

선교사님 역시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적잖게 당황하고 계셨다. 누군가로부터 철수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루 남은 사역을 먼저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에 외국인 구호팀이라는 플랜카드를 걸고 나간다면 우리의 이동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당일 진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다음날 아침에 오라고 했던 터라, 이리 되면 우리는 약속을 어긴 게 되고 만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쓴다 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제까지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탄탄하게 묶여있던 팀원들의 의견이 나뉘고 있었다. 역시 사단은 교활하다. 찾아온 위기를 통해 우리를 흔들려고 했다.

그러나 저녁 모임을 경과하면서 우리들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했다. 더 이상 의견을 나누지 말고 기도하면서 아침 큐티 시간에 하나님이 주실 음성에 의지하자고 했다. 우리 모임의 리더인 소록밀알회 회장님은 이렇게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 아침에 일어나서 다니는 차 소리가 나면 계속 사역하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라고…. 새벽에 일어났을 때 감사하게도 차소리는 들리고 있었다. 이를 확인하듯 선교사님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상점은 다 닫았지만 차량 소통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날 사역은 감사와 탄성에서 시작됐다.

나환자들의 만띠우 섬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지막 날 사역에는 스리랑카 나환자들이 격리되어 거주하는 만띠우 섬과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반군점령 지역의 탄다말라이 가정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곳 모두 배를 이용해야 갈 수 있는 곳인데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진은 난민촌에서 사역을 진행하고 회장님과 일부 팀원이 만띠우 섬이 보이는 선착장까지 가서 기도만이라도 하고 돌아오기로 결정됐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뱃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 팀은 만띠우 섬을 방문한 첫 외국인이었다. 섬을 방문한 팀원들은 소록도를 섬기던 열정과 경험으로 나병 환자들을 섬겼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에게 경계의 눈을 멈추지 않던 그들도, 사람들이 경계하여 격리했던 자신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안아주고 만져주는 팀원들을 보고 감격했다고 한다. 함께 했던 그곳 수녀님들도 감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들의 육체와 마음 가운데 새겨진 큰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되었으리라 믿는다. 나병 환자를 섬기던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병은 의심할 나위 없이 중병이지만, 나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만큼 심각한 병은 아닙니다. 나환자들은 겉모습이 상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큰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경이로운 사람들입니다.

만띠우 섬에서의 사역은 우리를 뜻밖의 환대로 이끌었다. 그 섬을 섬기고 있던 수녀원(THERESA'S CONVENT BATTICALOA)에서 우리 팀을 저녁식사에 초청한 것이다. 우리 팀의 사역을 보고 크게 감동한 까닭이었다. 14명의 팀원만을 위한 식탁이 마련되었고, 90세 된 노수녀님을 제외한 원장 수녀님과 전 수녀님들이 우리 옆에서 서빙을 하면서 식사를 도왔다. 음식도 그곳에서는 꿈꿀 수도 없는 진수성찬이었지만, 수녀님들의 섬김은 감격 그 자체였다. 어느 팀원은 천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면서 그 감격과 감사를 표현했다.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섬김을 하나님은 이토록 크게 갚아주신 것일까? 전날 팀원을 급습했던 위기는 이날 기쁨과 감격으로 완벽하게 역전됐다. 우리는 함께 'God is so good'을 불렀다. 이날 구교와 신교는 하나가 되었다.

박종건 선교사와 오지의 가정교회

이번 사역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박종건 선교사님과의 만남이다. 그분은 10년째 스리랑카에서 사역하고 계신 감리교 파송 선교사이신데, 반군지역에서 사역하고 계신 유일한 선교사였다. 이미 50의 나이를 넘긴 선교사 님은 독신이셨다. 그분의 숙소는 영국감리교에서 지은 기숙사의 방 한 칸이었다. 철제 침대 한 개와 가구 하나 보이지 않는 썰렁한 방. 현지인인지 선교사인지 알아보길 힘든 허름한 복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에는 치장이 없었다.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도 은혜롭게 포장하여(?) 설명하실 법한데도, 온갖 것을 다 경험해 보았지만 "말해 뭐합니까"라면서 입을 닫으셨다. 그분의 말과 생활 모두가 가난했다.

자신이 가진 선교의 원칙도 분명해 보였고, 그것에 어긋나면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이번에 우리 팀과 함께 사역하기도 예정되어 있던 어느 팀도 '그런 생각이면 아예 오지 말라' 해서 결국 함께 하지 못했을 정도다. 소신이 분명한 성격 탓에 초반에 일부 오해도 있었지만, 팀원 모두 선교사 님을 알아갈수록 그분과의 만남과 사역에 감사하게 되었다. 또 남들을 섬길 줄은 알아도 정작 자신은 섬김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이었다. 심지어는 축복송을 받는 것마저도 마다하셨다. 바띠깔로아를 떠나며 선교사님의 숙소 앞에서 억지로 축복송을 불러 드리며 우리는 눈물로 노래를 불렀다.

선교사 님의 사역지는 자신의 숙소로부터 2시간 거리에 있는 반군지역 안의, 오지의 가정교회와 그보다는 좀더 가까운 곳에 있는 역시 반군지역의 작은 교회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지의 가정교회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갈 수가 없었다. 반군 지역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막 오후 진료를 시작하려던 차에 선교사님이 달려왔다. 조금은 흥분돼 보였다. 배가 움직이게 되었는데 같이 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찾아가는 곳의 길이 좁아 오토바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뒷자리에 탈 수 있는 한 사람만 그곳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감사함으로 가겠다고 했다. 40분 정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반군 지역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40분 정도를 더 가서 정말 오지의 가정 교회를 찾아갔다. 산길이 좁아 10여 분은 걸어야 했다. 가는 도중 우리 바로 앞에서 하늘을 향해 AK 소총을 쏘고 있는 반군을 만났다. 무슨 의미의 사격이었을까? 겁이 좀 났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움막 같은 가정교회에는 14명이 출석하고 있단다. 오지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마치 지상의 카타꼼 같은 교회를 보면서 덜꺽 눈물이 나왔다. 처음으로 교회를 출석한 사람은 간질을 고쳐보려고 나오기 시작한 사람이었단다. 병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교회에 계속 출석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알고 우리 팀은 간질약을 가져갔기에, 이제 그는 교회를 통해 병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역만리의 이방인을 통해 우연처럼 보이는 기회에 고침 받게 되는 병, 우연 같은 필연, 이것이 기적이 아니겠는가? 그 한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하셨는지도 모른다.

현대교회는 언제부턴가 효율성과 성공을 제일의 목표인양 삼는 경향이 있다. 효율적인 선교, 성공적인 목회 등…. 과정보다도 결과가 중시된다. 자본주의의 논리가 교회 안으로 포섭된 결과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2시간 떨어진 오지의 14명을 섬기는 사역은 얼마나 초라하고 비효율적인가? 선교사 님은 일주일에 네 번을 방문한다고 했다. 왕복 3~4시간을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투자한다니 이처럼 비효율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다르다. 하나님에겐 한 생명이 곧 천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 나 같은 죄인 한 명을 위해서 죽으셨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을 보지 않습니다. 나는 구체적인 한 사람을 볼 따름입니다. 대중을 보았더라면, 나는 결코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반군 지역, 그것도 찾아가기도 힘든 오지의 교회를 섬기게 되었을까? 그 스토리가 나는 궁금했지만 선교사님은 끝내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저 마음이 그들에게 향했고 가난하게 살고자 할 뿐이라는 말씀 말고는. 나는 그분의 사역과 삶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박종건 선교사님은 진짜 진국인 선교사님이었다.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진짜 도움 받은 사람은 바로 우리들

쓰나미 현장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은 실상 우리들이다. 우리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들의 얼굴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 함께 고통 받고 있는 예수를 느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바로 예수님 그분을 도운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5~36, 40).

육체적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진정한 기쁨(JOY)은 예수(Jesus)를 처음에, 다른 사람(Others)을 두 번째에, 그리고 자신(You)을 마지막에 놓을 때 얻어지는 것이라 하였는데 정말 그랬다. 그들에게 준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받고 돌아왔다. 그들을 도운 것이 실상은 나를 도운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아픔이 정말 나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린다.

"오 고통당하고 계신 예수여,

병든 사람의 모습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그들을 돌봄으로써 당신을 시중들게 하소서.
당신은 분노와 죄와 광기의 메스꺼움 속에 숨어 계시지만,
저로 하여금 당신을 알아보고,
"고통당하고 계신 예수여, 당신을 시중드는 일이 달콤합니다."
하고 말씀드리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 이러한 믿음의 비전을 주소서.
그러면 저의 일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저는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작은 생각과 바람까지 품음으로써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병자여, 당신은 내게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랍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니까요.
당신을 보살피게 된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고통당하는 예수이시니,
제에게도 예수가 되어 주셔서
저의 잘못을 관대하게 받아주시고,
고통당하는 당신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 속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저의 마음만을 보아주소서.
주여, 저의 믿음이 자라게 하소서.
저의 노력과 사역에 은혜를 베푸소서,
이제와 영원히."

-마더 테레사

김신곤 /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임상교수 '밝은 의료사회를 위한 누가들의 모임(밝누모)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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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라파 2005-04-01 01:47:50

    저는 박 선교사님과 신학 편입 동기 목사입니다.
    나이 차이는 16살이 나지만, 그래도 형님 같으신 선교사님을
    제 동기로 같이 사역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쓰신 대로 정말 박 목사님은 타협이 없는, 외골 수 목사이지만
    그의 선교의 열정이나 주님을 향한 사랑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분이십니다. 어제..감리교 연회 때문에 일시 귀국하신
    목사님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냈지만, 참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 아니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 부탁드리며..진정한
    선교, 즉 물질로만의 선교가 아닌, 진정한 섬김의 선교를 몸으로 보이시는 박 선교사님 사랑합니다...황 목사.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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