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옥한흠 홍정길 이중표 이동원 하용조 목사 등 이른 바 '스타군단'으로 구성된 한미준(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예비 목회자인 신학생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다.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있은 이번 세미나에는 교단을 초월해 800명의 신학생들이 참석했으며, 이동원 이중표 김인중 김동호 이성희 박은조 오정현 한정국 전병욱 방선기 송태근 목사를 비롯한 18명의 한미준 회원 목사와 장로들이 수련회 기간 동안 현장에 머물며 신학생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다. 따라서 이 행사는 이동원 목사의 말처럼 "강사들이 말하는 것보다 신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우리들의 생각을 성실히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신학생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셈이다.

실제로 이번 세미나는 트랙별 강의와 토론이라는 특이한 진행방식을 취했다. 설교 영성 선교 목회 전문인 등 5개 트랙으로 나눠 각 트랙에 적합한 강사들을 두 세 명씩 배치한 뒤 이들 강사진이 각 트랙으로 돌아가며 모임을 이끌었다. 마치 각 과목별 선생님을 두 세 명으로 짠 뒤 이들이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로 돌면서 2시간씩의 강의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각 트랙에선 강사 두 명이 35분씩 강의를 하고 나머지 약 1시간을 질문과 대답으로 채웠다. 신학생들이 그 동안 품어온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뿐만 아니라 휴식시간 등을 활용해 숙소와 로비 등에서 신학생들과 소그룹으로 자유스럽게 모여 또 많은 대화를 가졌다. 어느 참가 학생의 말처럼 그야말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또 다른 의미도 갖는다. 역시 이동원 목사의 평가다. "교파를 초월해 신학생들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함으로써 그들이 목회현장에 설 때는 교파간 갈등보다 연대하려는 기대를 갖게 만든" 대회이기도 했다. 총신대 신대원생들이 200여명으로 가장 많이 참가했지만 이밖에도 장신대 감신대 순복음신대 고신대 등에서 목회자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골고루 참가한 것은 이 목사의 기대를 충분히 반영한다.

어쨌든 이번 세미나는 한미준이 그야말로 이름 값에 걸맞는 행사 하나를 열었고, 신학생 훈련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원 목사는 앞으로 매년 이 시점에 똑 같은 규모의 신학생 세미나를 치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단지 참가자들의 폭주를 감안해 3학년들을 우선 받기로 하는 등 합리적인 운영방안은 계속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89점짜리 행사

한미준, 곧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이름만 들으면 상당히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미래는 마치 '그들만의 독점물'인 양 느껴지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감성 반응을 제쳐놓고 한미준 구성원들의 면모를 보면 그 정도는 넉넉히 수용할 수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어느 행사를 가든 'A급'이 아닌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 초청하더라도 인원동원엔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되는 현실 아닌가. 그런 그들이 한꺼번에 모인 모임이라면 한국교회의 미래뿐이겠는가.

게다가 이번 행사는 주최측인 한미준이 5000만원의 운영적자를 감수하면서 치른 대회였다. 회원들의 헌금 없이는 생각도 못할 행사 아닌가. 게다가 미국에서 온 목사들 4명 가운데 3명은 단순히 이 행사 하나만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헌금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런 대회니 만치 참가인원 800명의 마감이 행사 시작 한 달 전에 이미 마무리됐다. 그것도 한국교회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을 통해 등록을 마무리했다.

그뿐 아니다. 한미준 회원들은 2박 3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사랑의교회 수양관에 머물면서 신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집회에도 함께 참석해서 함께 눈물 흘리고 부르짖는 모습은 보기 좋다 못해 취재기자조차 감사기도를 드리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행사였다.

결과도 좋았다. 참석한 신학생들은 강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멀리서 존경해마지 않던 이른 바 '목회의 대가'들인가. 그들의 강의를 테잎을 통해, 또 다른 대중집회를 통해, 또 책을 통해 들으면서 젊은 신학도의 마음 속은 얼마나 요동하고 눈물 흘렸을까. 그런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가까이서 대화하고 마음 속의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으니, 이건 그야말로 그들 말처럼 "황홀한"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여기까지는 좋다. 만점짜리 행사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아무리 그것이 현실이고 객관적인 시선이라 하더라도 잔치를 배설한 호스트가 '우리 잔치 만한 잔치는 더 이상 없다'며 자랑을 늘어놓고, '이 잔치를 여느라 우리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아느냐' 강조한다면 그건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결코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랬다. 좋아라 하는 신학도들,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우리들에게 감사하게나'라며 강요하는 듯 했다. 게다가 자신들을 일컬어 "국보급"이라느니 자화자찬까지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 속 깊은 의미는 그게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역시 '민감성' 질환일까, 우리는 그들의 웃음 속에서 '역시 우리들 뿐이야' 라고 말하는 유치함을 느꼈다.

만약 우리가 본 그 느낌이 일말의 진실이라도 포함하고 있다면, 그들이 정말 그 정도라면 우린 솔직히 그들을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들을 보는 우리의 기대치는 그보다는 한 단계 높았음을 우리는 이렇게라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에 지나지 않았기를 우리는 정말 기대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신학생 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의미 있는 이번 행사에 대해 우리는 '마이너스 1점'을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A급 강사의 A급 대회에는 그 '1점'이 모자라는 '89점' 짜리 행사로 평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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