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일이다. 한 교회의 집사님이 소천하셨다. 유감스럽게도 소천한 요일이 금요일이라 장례식이 주일이 됐다. 문제는 집사님의 가정 모두가 불신자 가정이라는 사실이다. 이 교회가 위치한 곳은 농촌지역이었다.

농촌은 특정한 종교라기보다는 농촌 나름의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축제 형식의 장례문화를 지켜오고 있었다. 믿음을 갖지 않는 가족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례를 주일에 치러야 하는데 과연 교회에서 도와줄 것인가?

바로 이때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말이 오고갔다. "교회가 장례를 주도하면 우리는 뒷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지역주민을 등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역할이다. 담당 교역자는 장례일에 대한 논의도 하지 않고, 주일에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말에 조문도 하지 않고 교회로 돌아가 버렸다. 소천한 사람은 바로 그 교회 집사였는데 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설령 교회가 장례를 주도한다고 하여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교회구성원의 문제다. 그 교회에는 연로하신 분과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관을 옮기거나 매장을 할 때 도와줄 인력이 태부족이다. 왜 지역사회 내의 젊은 남자들은 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 장례를 향한 태도를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하기 쉽다. 이 교회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 내에 있는 유일한 교회였다. 다행히도 어떠한 교단의 교회도 이 지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교회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미미했다. 교회는 거룩했을지 모르지만 지나칠 정도로 지역사회와 유리된 관계였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였지만, 이 교회는 세상 밖에 있는 구별된 교회였다. 영향력이 없는 교회, 결국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요, 빛의 찬란함을 밝히지 못하는 빛일 뿐이다.

교회다운 교회란 무엇인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치인들은 예수님의 영향력에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경제인들도 그리고 당시의 종교인들도 예수님의 영향력을 대단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세상의 법정에 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종교 안에서만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종교 밖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길이 있다. 한 교회의 목회자는 그 교회만의 목회자여서는 안 된다. 그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사회를 목회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함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여야 한다. 한 교회의 장로는 교회 안의 장로여서는 곤란하다. 장로(Elder)는 어른이란 말이다. 즉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의 어른이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 하는 지혜의 현현이어야 하고, 세상과 다른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여러 행사에 초청하고 싶은 사람이 장로여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지역사회를 향한 발걸음이 달라져야 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을 지역사회로 파송해야 한다. 독거노인, 무료급식, 복지관, 시장청소, 환경정리, 소년소녀가장, 그리고 장애인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교인들을 파송해야 한다. 전교인의 선교화가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교회의 제직과 장로는 예배당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교인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대소사에 참여해 의미 있는 협력의 손길을 베풀어야 한다.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 역시 쉬는 날 목회자의 친목모임에 목숨 걸고 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즐거워야 한다.

안산의 어느 교회는 교회성장의 비결 중의 하나가 지역사회의 청소년과 함께 한 길거리 농구대회 개최였다. 제천의 어는 교회는 지역사회의 어르신들과 십여 년째 즐거움을 나누는 교회로 유명하다. 인천의 어느 교회는 장애인들과 함께 할 뿐 아니라 이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역할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강남의 어느 교회는 재가노인, 독거노인에게 밑반찬을 쉬지 않고 배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용산의 어느 교회는 구청이 무료급식을 위임할 정도로 신망이 두텁다. 이러한 교회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해외에 선교사는 많이 보내면서도 지역사회에 대하여 인색하면 문제가 있는 교회다.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에 교인의 대부분이 참석하지만, 매일 주차난 때문에 지역사회의 원성을 듣기만 하고 지역사회의 칭송을 받지 못하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아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교회의 좋은 소문이 아가야 지방에까지 들려져서 바울이 더는 할 말이 없었노라고 고백하였다. 교회는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만을 위한 위로단체 혹은 서클이 아니다. 교회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나아가는 존재다. 멀리 가기보다는 먼저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교회, 영향력 있는 목회자와 장로, 영향력 있는 제직들, 그리고 성도들.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교회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민이 많을 때, 혹은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교회가 참여하는 부분이 많을 때 영향력 있는 교회가 거기에 있다. 그 교회에 좋은 소문이 믿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회자될 때 진정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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