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언론에 재직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임 중에 '한국크리스천기자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기자협회가 최근 발간한 협회보에 촌지와 관련해 기자들 스스로가 쓴 글 두 편을 소개한다.  


  
<능력있는 기자>

‘능력있는 기자’라고 하면 뭘 말하는 것일까? 딱 하나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보를 많이 아는 기자나 고위층 취재원을 많이 확보한 기자, 사건을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자, 글을 정말 잘쓰는 기자, 아이디어가 기발한 기자, 흐름을 읽는 눈이 예리한 기자... 끝이 없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능력있는 기자 범주에 ‘잘 땡기는 기자’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잘 땡기는 기자’라니… 한 마디로 ‘촌지를 잘 땡기는 기자’를 말한다.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자기네 필요에 따라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먼저 요구해서 기자회견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기자회견 자체가 정말 꼭 필요한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별 필요도 없는데, 단지 ‘거마비’ 혹은 ‘촌지’를 받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자고 졸라덴다면(?) - 그야말로 잘 땡긴다면 - 어디 제대로 된 기자라고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요즘 교계 언론계에 보면 이런 기자들이 늘고 있고, ‘잘 땡겨야만’ 능력있는 기자로 치부되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있다. 큰 뭉치의 ‘촌지’를 준다고 해도 뿌리쳐야 할 판에, 얼마 되지도 않는 ‘촌지’를 받기 위해 졸라대는(?) 양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잘 땡기는 기자’는 절대 ‘능력있는 기자’가 아니라 ‘바람직하지 못한’ 기자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잘 땡기는 기자’(?)들 때문에 교계 기자들 전체가 이상한 시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취재하는 어느 한 기자가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이상한 듯 갸우뚱거리며 난색을 표하더라는 것이다. 굳이 피할 필요가 없었는데, 혹 자기가 뭘 요구하는 줄 알고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는 설명이었다. 이게 교계 취재현장에서 느끼는 작금의 현실이다. “자기 혼자 먹지 않고 나눠 먹는다”든지, “잘 땡긴다”든지 하는 것을 미덕이나 능력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능력있는 기자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새겨볼 일이다.



<헷갈리는 교계신문 제호와 잘 땡기는 기자>

지금 교계 기자들은 두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나는 잘 땡기는 기자가 능력있는 기자로 자리매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비슷한 교계신문 제호로 출입처 관계자들과 기자들 사이에 혼란이 더해가고 있는 것. 이 두 가지 문제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모두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보도를 위한 것이라면 그나마 바람직하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교계 언론사는 지금 최악의 재정난에 처한 상태에서 구조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비리와 이권을 중심으로 독버섯처럼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간, 격주, 잡지사 등 3-40종으로 추정되는 교계언론사를 굳이 지칭하지 않더라도 영어로 표현하면 더 크리스챤 페이퍼(또는 더 크리스챤 프레스)에 해당할 기독교 계통 신문이 우리나라에는 턱 없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쯤 되니 교계단체나 개교회, 교회 관계자 등이 교계 신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애교(?)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관계자들이 비슷한 교계신문 제호로 인해 광고 등 기사부분에서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를 본 사람들은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저 액땜이나 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특히 일부 기자들은 영향력 있는 기존의 신문 제호를 사칭(?)하고 다닌다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 교계에서 ‘능력있는 기자’를 정의해 본다면? 물론 딱 하나로 얘기할 수는 없다. 기사를 끝내주게 쓰는 기자, 정보를 많이 알거나 교단이나 기관의 고위층 취재원을 많이 확보한 기자,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자, 창의력과 상상력이 기발한 기자, 흐름을 읽는 눈이 예리한 기자… 끝이 없다.

최근 들어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기자 범주에 ‘잘 땡기는 기자’가 깊숙이 자리잡은 것 같다. ‘잘 땡기는 기자’는 한마디로 말해 ‘촌지를 잘 땡기는 기자’를 말한다.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정말 필요(?)에 따라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기자들이 먼저 요구해서 기자회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경우 기자회견 자체가 정말 꼭 필요한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별 필요도 없는데 단지 ‘거마비’ 또는 ‘촌지’를 받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자고 졸라댄다면(?)-그야말로 잘 땡긴다면…- 난감할 뿐이다. 그런데 요즘 교계 언론에서는 이런 기자들이 늘고 있고, ‘잘 땡겨야만’ 능력있는 기자거나 후배에게 적어도 일용할 양식을(?) 함께 나누는 좋은 선배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교계에서 쌓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이같은 관행에서 자유로운 기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잘 땡기는 기자’가 절대 ‘능력있는 기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잘 땡기는 기자들’(?) 때문에 교계 기자들 전체가 이상한 시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패기있고 꿈을 가지고 일선에서 뛰었던 기자거나 지금 순수한 열정으로 뛰는 기자라면 모르는 단체나 성직자 등에게 취재를 부탁받으면서, “돈이 없어서…, 몇분만 모시면…, 대가는 얼마나 드려야 할지…” 등등 난색을 표하는 말로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게 교계 취재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작금의 현실이다.

어쨌든 교계 기자는 어쩌면 그만큼 불쌍하고 힘든가 보다. 한국교회의 황금박쥐가 아닌 똥박쥐란(?) 비아냥거림이 그저 교계기자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서글플 뿐이다.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기자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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