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의 종주국인 스코틀랜드 교회 헌법(The Constitution and Laws of the Church of Scotland)은 편의성(적용)을 원칙 못지않게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용이 불가능한 원칙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헌법은 편의성보다 원칙을 중요시 한다. 편의성을 도로의 흰색 라인으로 비유하면서, (자동차가 흰색 라인을 넘으면 편리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즉 원칙을 무시한 편의성은 언젠가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사제도를 생각해보자. 권사제도는 분명히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직분이다. 성경에 나오는 직분은 감독, 목사, 교사, 장로, 집사다. 역할 분담이 명료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감독과 목사는 영적인 일과 관련된 것으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이고, 교사는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이며, 장로는 감독과 목사를 도와 교회와 관련한 일을 돌보며 때로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찾아 심방도 하는 행정과 영적인 일들 동시에 하는 직분이다. 집사는 보통 봉사를 하는 직분으로 되어있다. 권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칼빈 역시 기독교강요에서 목사, 교사, 장로, 집사만을 언급하고 있다.

권사제도의 기원은 감리교의 원조 존 웨슬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46년 당시 웨슬리가 권고하는 자로서의 뜻을 가진 권사(exhorter)라는 직분을 만들 때는 사역자가 부족해서 헌신적인 평신도를 택해서 일정기간 훈련시킨 다음 평신도 설교자(lay preacher) 역할을 하게끔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권사의 원래의 기능은 설교자가 없는 곳에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설교뿐만 아니라 초신자들이나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권고뿐만 아니라 심방을 통하여 상담과 위로의 기능도 담당하여 사역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목회자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39년 미연합감리교회는 남북 감리교단이 연합되면서 exhorter(권사)의 직분을 폐지한다. 그 대신 미연함감리교단은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와 평신도 지도자(lay leader)라는 직분을 세워 말씀 사역자로서 봉사하게 하여 직분의 명칭만 사라지게 한 채 그 기능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으로부터 자격증(license)이 필요하다. 총회에서 실시하는 성서학, 교리, 기독교인의 삶, 실천 등의 공부를 한 다음 평신도 사역자 자격증을 얻는다.

이러한 감리교의 권사제도가 한국 감리교에 들어올 때는 처음에는 견습, 또는 권도사라고 불렀다. 이 제도는 1955년 제 40회 총회에서 안수집사와 같은 대우로서 장로교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는 장로나 집사가 많이 없었던 터에 교회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하여 신앙연조가 있으며, 덕이 있고 신망이 높은 여성 평신도를 권사라 하여 교회 봉사일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폐지되지 않고 오늘까지 이르게 되어 권사라는 직분으로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여성은 교회직분으로 서리집사 이외에 사실상의 집사인 안수집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권사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다. 쉽게 얘기하면 권사는 신앙이 좋으며 30세 이상 된 여자 서리집사의 일계급 특진인 것이다. 미장로교는 1900년도 초에 여성집사(안수)제도가 채택된다. 미장로교헌법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한국장로교는 감리교에서 사용한 직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최근 통합 측 교단은 권사의 안수를 결정하여 이제는 안수권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가 원칙 없는 편의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감리교의 평신도(남자, 여자)설교자로서 권사의 원래 취지를 거부한 것이며,권사라는 직분이 없는 성경의 원칙과 개혁 장로교단의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

현재 한국 장로교단은 이미 미감리교에서도 폐지한 직분을 아직까지 차용하고 있으며(한국은 아직 존재), 그것도 남자까지 부여받던 직분을 여성만 가능하게 만들었고, 안수집사의 직분도 거치지 못하고 치리권도 없게 했다. 안수도 편의상 최근에 한 것이다. 그러면 타교단의 '미안수 권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속 편의성을 추구하다 보니 근본 원칙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감리교와 성경과 장로교단의 원칙을 거부함으로서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유의 편의성의 수용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 장로교단은 수많은 핍박과 박해에서도 교회역사 100년을 버텨온 성숙한 교단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장성한 교단으로서 편의성을 벗어나 성경과 장로교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현실성과 편의성에 익숙해 있다. 어쩌면 100년 한국의 교회사는 원칙과 편의성의 변증법적 발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차원에서 권사제도의 개정(폐지)에 대해서 고려해 볼 때다. 개혁을 뜻하는 'Reformd'는 편의성으로 인해서 흐트러진 원칙(form)을 다시(re) 잡는 것이 아닐까.  

황규학 목사 / 교회법연구원, 에큐메니칼 연구소, PC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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