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교회에서 후배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교회에서도 석연찮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당수의 하객들이 예식에 참여하지 않고 식당으로 향한다. 너무 너무 배가 고파서일까?

대충 분위기를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교회 예배식으로 진행되는 결혼식에 대한 어색함, 혹은 불만 때문이었다. 양가가 모두 기독인일 경우는 물론이고, 어느 한쪽만 기독인이어도 힘이 셀 경우 결혼식을 예배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안타깝게도, 그럴 때면 비기독인들은 가족, 친지의 결혼을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하게 가로막는 기독교에 대해 한층 깊은 불신을 쌓아간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고 계속 악순환 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즉, 기독교식으로 예식을 진행하더라도 비기독교인들도 깊은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10여년 동안 예배와 예식, 축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나는, 오래 전 전라도 진도의 어느 장지에서 자그마치 세 명의 주례자가 차례로 등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불교의 승려와 무당, 그리고 목사 등 세 사람이 차례로 예식을 집례한다.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로 말미암아 예식 비용이 훨씬 많이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예식 과정과 그 이후 집안 식구들의 사이가 한층 더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깊은 상처를 안겨 준 것일까?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제사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결혼식과 장례식처럼 일생에 한번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것이 바로 제사가 아닌가! 사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나는 이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으나, 예식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친족 가운데 신자와 비신자가 섞여 있는 집안의 경우 이것이 얼마나 크나큰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신자의 힘이 약한 집안에서는 제사로, 그리고 신자의 힘이 강한 경우는 추모예배 형태로 진행되기 마련인데, 두 경우 모두 가족간에 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일차적으로 이상 문제들의 책임은, 선교 1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수입신학'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신학풍토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기독교문화권인 미국과 유럽의 경우, 비록 교회에 다니지 않더라도 결혼식 주례와 장례식 주례를 목사가 하는 것은 익히 아는 바다. 즉, 온 국민이 기독교식으로 예식을 진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한국과 같이 한 가족간에도 다종교적인 경우 발생하게 될 제 문제들에 대하여 신학적인 대안을 미리 마련해 두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교회 안팎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른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신학의 사명일 터인데, 지난 100여년 동안 기독인 가정에서 관혼상제례에 관하여 그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수입신학'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는 것이 한국 신학계의 현실인 것이다.

관혼상제와 같은 평생의례는 가족들 간은 물론, 하객과 조문객들과도 하나되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기회이다. 안타깝게도 그 동안 한국의 기독교인 가정에게는 알게 모르게 이 소중한 만남의 기회가 오히려 분열의 위기가 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기독교적인 분명한 주체성 없이 적당히 타협하는 혼합주의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비기독교인들과도 하나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비록 신학적 완결구조를 갖추지는 못했어도,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수십 차례 관혼상제례를 연출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적인 형식과 내용을 중심으로 삼더라도 비기독교인들도 흔쾌히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심하던 중, 예식 과정의 모든 양식들을 한국전통문화의 도움을 받아 꾸렸을 때, 의외로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조금만 정성을 더 들이면 품위와 친화력이 배가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지면관계상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공통분모, 공동의 유산을 물려주신 선조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나는 선조들에게 그렇게 뛰어난 문화창조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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