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당연한 권리 중 하나인 단체교섭을 통한 임금인상 요구로 시작된 이랜드의 파업이 68일째를 맞았다. 파업, 농성장 침탈, 폭력, 기물파손, 직장폐쇄 등으로 얼룩진 지난 68일. 노사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이랜드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앙과 지난 20년간의 신화적 성장이다. 물론 신화적 성장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러나 신화적 성장을 이룬 주역들 중 대다수는 지금 이랜드를 떠났다. IMF의 여파는 이랜드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50%가 넘는 직원들이 정리해고를 통해 회사를 떠나야 했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임금동결과 삭감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이 아닌 '고통전담'을 요구했던 것이다.

IMF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난해는 3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임금협상에서 회사측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노조원들을 파업현장으로 내몰았다. 이랜드 노동조합(위원장:배재석)은 저임금 구조 개선과 부당노동행위 철회 그리고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6월 16일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했다. 전체 직원의 10% 정도에 불과한 220명의 파업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었다. 파업기간 중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돼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506,000원을 받아 생활했던 노동자들에게 수개월치 월급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노조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회사측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11차례의 교섭을 통해 대화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노조는 파업을 결정하면서 절차상으로 조정전치주의에 따라 노동쟁의조정신청 후 10일간의 조정기간과 조정회의를 두 번이나 거쳤다. 또한 전체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파업 찬반투표를 해 8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을 이끌어내 정당성을 확보했다.

노조원들은 ▲임금인상 ▲(주)2001아울렛 3월 임금인상 ▲정규직 적정인원 유지 및 정규직 충원 ▲불법파견노동자 직접고용 및 현 부곡물류센터 비정규직 정규직화 ▲도급제 전면 철폐 ▲일방적 계약해지 금지 ▲일자리 원상회복 ▲부당징계 철회 ▲공정승진 보장 ▲박성수 회장과 직접교섭 등 10개항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인상에 있어 506,000원인 부곡 비정규직들의 임금을 726,000원으로 인상해 달라는 것은 노조 집행부의 생각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요구안이고 이것 역시 IMF 이전으로 회복시켜 달라는 것인 만큼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는 것이 노조 지도부의 생각이다.

또한 회사가 행한 불법 파견노동자에 대해 직접고용을 실시하고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비중의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화 해달라는 것이다.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파견근로자법)에 의한 파견대상은 아주 일시적으로, 예를 들어 직원이 출장을 갔다거나 임신으로 휴직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결원이 생겼을 때 일시적으로 보충하기 위한 경우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게 되어 있다. 또한 파견근로자법과 근로기준법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랜드가 행한 파견근로는 전형적인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이랜드는 실제로 이와 관련해 노동부로부터 불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측에선 성과급 지급만을 약속했을 뿐 어떠한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고 있다. 지난 8월 1일 서울서부지방노동사무소에서 있었던 3차 공개협상에서 노동사무소는 "이랜드 노동조합과 이랜드 5개 계열법인 대표이사는 올해 임·단협 교섭과 관련하여 장기화되고 있는 노사분규를 조속히 종결시키고 매년 임·단협 교섭시 분규요인으로 상존했던 교섭방식 등에 관하여 그 교섭원칙을 성립함으로서 향후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임·단협 교섭관행을 정착시키고 노사관계의 발전을 도모코자 이랜드 노동조합과 이랜드 사용자연합회(계열법인 각 대표이사)를 교섭당사자로 하고, 임금교섭은 실무교섭과 본 교섭을 병행하되 법인별로 실무교섭을 거친 후 이랜드 노동조합과 사용자연합회간 본 교섭에서 일괄 타결하여 체결한다"는 내용의 중재 안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은 이를 수용한 반면 회사측은 '법인별 교섭'만을 주장하면서 노동사무소의 중재 안을 거부, 협상이 결렬됐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회사측은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 아룰렛쟁의행위금지가처분신청, 위원장 외 노조간부 10여명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 고발, 아울렛 파업참가 조합원 80여명 징계위원회 회부, 불법대체근로 시행, 직장폐쇄 등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회사 대표인 박성수 회장은 파업이 시작된 이후 외국에 체류 중이다.

이제 이랜드 사태는 조금은 본질에서 벗어나 신앙을 빙자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크리스천 기업가 박성수 회장에게로 초점이 옮겨지는 느낌이다. 이랜드 그룹은 모두 5개의 계열 법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각의 법인 대표이사는 명목상의 대표일 뿐 실제적인 결정권은 박성수 회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만큼 모든 초점은 박성수 회장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랜드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실제적인 결정권자인 박 회장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데 있다.

이제 이랜드는 대표적인 기독교 기업에서 신앙을 빙자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악덕기업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 선교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박 회장 개인이 아무리 회사 이익을 사회사업과 선교사업에 쏟아 붓는다 해도 이번 사태로 실추된 한국교회와 이랜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 아니 박 회장은 △기업은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며 그 이익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기업은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정직해야 한다 △직장은 인생의 학교이어야 한다 △기업은 고객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네 가지 경영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이랜드 성공요인으로 △아이디어 △성실한 땀 △검소와 절약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황금률 경영 △신앙 등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결국 이랜드의 오늘이 있기까지 노조원을 포함한 전 사원의 성실한 땀과 신앙이 있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땀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조원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고 탄압하는 행위는 스스로 정체성을 부인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회사측의 전향적인 자세변화 없이는 이랜드 사태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신앙을 이유로 헌신을 강요하기보다는 분배의 문제 나눔의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자발적인 참여란 미명하에 강제가 뒤따른다면 머지 않아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노동에는 프로를 강조하면서도 분배에 있어서는 헌신을 강요하는 관행이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이랜드는 계속 양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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