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전형방식은 좀 특별하다. 1999년 우리는 스물 다섯 명의 학생을 선발했다. 사실 별 다른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65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선발을 앞두고 여름 예비학교를 치른 게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을 일대일로 맞췄고, 학교가 위치한 전북지역 학생들을 절반 뽑았다.

보통 학교라면 높은 경쟁률에 기뻐했겠지만 우리는 마음이 착잡하다 못해 비통했다. 탈락과 경쟁을 없애자는 대안학교가, 모든 아이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자는 정신으로 설립한 우리 학교가 경쟁과 탈락의 장이 되고 말았으며, 합격자보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탈락의 아픔을 주고 만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의 우리 현실이라 받아들이면서도 한동안 멍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형에 있어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성적을 배제했다. 학과 성적을 보기 위한 입학시험은 실시하지 않았다. 중학교 성적표도 요구하지 않았다. 서류와 생활면접을 통해 선발을 마친 것이다. 서류면접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장래 비전을 기술하도록 했다.

거기에다 우리 학교의 교육이념, 기숙사생활과 노작활동에 대한 느낌을 쓰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몇 가지 주제로 시, 소설, 수필, 만화, 일기 등 어느 장르를 사용해서든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도록 했다.

이런 주제였다.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쓰레기를 보며, 아파트의 사람과 나무,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데, 기타 자유주제 등. 물론 글재주와 맞춤법은 보지 않았다. 부모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으로 오히려 수준 높은 글은 감점이 됐다. 또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는 의견, 자녀들이 갖길 바라는 꿈, 우리 학교에 대한 생각 등도 글로 쓰게 했다.

생활면접은 정원의 두 배수 학생들을 1차 선발해 그들과 교사들이 모두 1박 2일간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평가를 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이것만으로 아이들을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지 1-2점의 점수로 아무런 고민없이 아이들을 평가하고 선정해 버리는 손쉬운 길은 피하고 싶었다. 우리들에게도 선정 기준은 있었다. 부모는 원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원치 않을 경우, 좀 더 노력하면 기존 학교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아이, 이미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는 아이…, 이런 아이들은 다른 학교를 찾도록 권유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교사들이 느낀 고뇌는 어떠했겠는가. 탈락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아픔은 말해 무엇하랴. 이때 우리는 학부모 한 분으로부터 다음의 편지를 받았다.

"…너무나 아픈 가슴으로 이 글을 씁니다.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면서부터 시작된 제도화된 학교교육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리고 회의…, 너무나 많은 갈등 속에서 오늘날까지 아이들을 등떠밀어 학교로 보내야만 하는 아픔, …신문에서 처음 접한 푸른꿈학교, '바로 이곳이다' 라는…이제까지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합격은 아이에게 너무나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몇 시간을 우는 아이를 달래고 저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것을 아마 찢어지는 아픔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선생님 소식지는 계속 보내 주십시오. 푸른꿈학교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런 아픔이 없는 그날을 위해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음 또한 한없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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