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
동양의 고전에서 익히 들어온 말이다. 이 말에 대한 오늘날 자본주의의 반응은 이익에 밝은 인간이 왜 소인이냐는 항변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일이며, 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자야말로 이 시대의 적절한 인간상이 아니냐는 말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다. 군자를 부르짖던 그 시대 역시, 이익에만 집착하려는 인간의 성향이 도처에 넘쳐남을 보고 이를 경계하기 위해 한 고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본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방임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그 시대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의만을 추구하면서 이 현란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그런 자세에서 무슨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라는 항의성 주장이 있다. 또 그런 이의제기가 일면 타당성을 지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결국 인간 사회의 모든 싸움과 불행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욕망이 낳은 자식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 추구를 제재하는 사회적 법(강제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의의 추구를 숭상하는 도덕적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의약분업이라는 것을 두고 의사와 약사와 정부와 백성들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어차피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근거로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마음에 두고, 진정 의(올바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의사들에게 있어서 '올바른' 의약분업은 이제까지 그들의 주장과 행동을 살펴봤을 때,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해진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감히 약사가 의사들이 한 처방전에 대해 간섭하는 것(대체조제, 임의조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방줄 연수로 보나, 대입 합격 점수로 보나 의사들의 판단에 약사가 꼽사리를 끼거나 첨삭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오만이 그들의 심중에 깔려 있다.

대체조제, 임의조제를 철저하게 법으로 원천 봉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약의 포장 단위를 대량으로 못박아 놓을 것을 고집한다. 만일 포장 단위를 소량으로 할 경우 약사들의 임의조제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약사들이 안 그러겠다고 하고 정부도 엄중하게 단속을 하겠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꼬집고 싶은 대목은, 백성들 보고 약사와 정부는 못 믿지만 의사는 믿어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의사는 믿어도 된다고 믿는 것은 의사들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의사의 무소불위적 권위만을 내세우고, 환자의 죽음은 무시한 채 어쩔 수 없는 선택라는 오리발만 내미는 오만한 의사의 양심적 시술을 믿어달란 말인가.

내 돈 내서 치료 받으면서 촌지까지 가져다 주고 의사들에게 친절한 대접받아 본 사람들 있다는 얘기 별로 못 들어봤다. 치료에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고압적 태도에, 질려버린 사람도 많다. 의사들의 양심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확신이 안 간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요구는 (의사들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절대로 망할 수 없는 의사라는 직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만 되었는데 망해서 본전도 못 찾았다는 말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절대적 안전빵의 직업 수위를 계속 수호해야 한다는 욕망이 그의 심층의식을 사로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내 눈에 뭐가 씌인 것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껴온 바인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비싸다는 건물 임대료와 고가라는 의료 장비 등을 빚으로 장만해도 몇 년만 지나면 환자들 주머니에서 알아서 채워주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돈을 긁어 모았던 과거의 기득권을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심사가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국민이 원하는 올바른 의료분업은 무엇일까.
첫째로 거론할 점은 의사의 독선, 오류를 감시하고, 이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방전의 공개 뿐만 아니라, 치료 행위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환자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진짜 중요한 사항인데 별로 논쟁화 되지 않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의사의 치료 행위를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가야 한다.

어떤 의사가 허리병 때문에 치료를 받다가 잘못되어 불구가 되었다. 자신이 의사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치료행위에 어떤 과실이 있었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과실을 밝혀내고 인정받는 데는 수년간의 힘겨운 싸움을 거쳤다. 심지어 같이 학교에서 공부한 의사조차도 법정에서 병원 측의 잘못이 없음을 증언할 정도였다니까. 하물며 아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의사와 병원의 강변에 눈물 삼키며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다음으로는 약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약을 처방함으로써 가급적 약의 사용을 피해야 하는 의사의 임무를 외면하고, 더 나아가 수익증대이라는 차원에서 환자들에게 비싼 약을 처방해 대는 일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약을 찍소리도 못한 채 복용하고 에누리없이 지불해야 하는 환자들의 처지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보다 값이 저렴한 약국을 골라서 이용할 수 있게끔 약의 유통체계가 공개화 될 필요가 있다.

부수적으로 의사들은 약값을 통해 이익을 얻는 길이 차단됨으로써 쓸데없이 비싼 약을 과용하고픈 유혹을 버릴 수 있으니 의사적 양심과 위치를 지키는데 훨씬 더 유리하게 된다.

이익보다는 의에 밝은 사람이 되기가 환경적으로 쉬워진다는 말이다. 이것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환자들로서는 그런 의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만은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익에 밝은 사람을 높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에 그저 김씨 아저씨, 아니면 김 사장 정도로 불러 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그 사람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는데 존경까지 해주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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