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로 인해 장기간 누워 있거나 정신지체, 만성질환 등 혼자서 목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목욕차량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이동목욕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목욕서비스를 원하는 대상은 늘어나는 반면 서비스 제공자가 부족해 많은 인원에게 혜택을 줄 수 없는 실정이다.

▲ 안양시가 지원한 이동목욕봉사차량. ⓒ이철용

이런 상황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과 오후, 이동목욕봉사차량을 이용해 찾아가는 목욕봉사 서비스를 쉬지 않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안양제일교회(담임목사 홍성욱)는 교회는 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정신으로 지난 3월부터 매주 안양시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동목욕봉사를 해왔다. 이동목욕봉사는 원래 안양시에서 추진하는 복지사업이었으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서비스가 중단될 처지에 놓이자 자원봉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단체는 종교단체뿐이라고 판단한 안양시 측에서 안양제일교회에 목욕봉사를 의뢰해서 시작되었다.

"개인의 영성은 사회를 섬김으로 나타나야"

▲ 욕조를 집안으로 이동하기 위해 준비하는 봉사자들. ⓒ이철용

안양시의 요청을 받고 잠시 망설였다는 홍성욱 목사는 "재정적 지원과 봉사 인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그러나 개인적 목회철학에 기인해 외형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건강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기고 일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홍 목사는 "신앙의 가장 기본은 '영성'이다. 개인의 영성은 기도와 성경,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를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내 삶을 통해 남을 섬기는 디아코니아(종됨, 섬김)의 신앙"이 개인적인 목회철학이라고 말했다.

안양제일교회가 목욕봉사를 하기로 결정한 뒤, 가장 큰 일은 책임감을 갖고 이 일에 헌신할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홍 목사는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은 세상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손길이다"라고 봉사자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김봉식 장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동목욕봉사팀을 총괄하고 있는 김봉식 장로는 "차량이나 물질적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봉사자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는 봉사자들의 열의가 없이는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없다"고 말하며 "밝은 모습으로 봉사하는 교인들의 얼굴을 매일 대하며 사니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라고 웃는다. 김 장로는 이동목욕봉사인원이 점점 늘어 지금은 대기자 명단까지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목욕대상자, 종교 구분치 않고 선정

▲ 개인의 영성은 사회를 섬김으로 나타나야한다는 안양제일교회 홍성욱 목사. ⓒ이철용

안양시에서 이동차량을 지원하고, 교회는 인력과 경비를 투자해 시작하게 된 이동목욕봉사. 이에 임하는 안양제일교회 봉사자는 40여 명이며 그들에게 목욕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하루에 4명씩, 총 50여 명 선이다. 목욕대상자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봉사자들은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에 2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총 10팀으로 구성되어있다.

목욕대상자는 1차적으로 보건소에서 선정하지만 교회 자체적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보강하기도 한다. 물론 대상자의 선정시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섬김의 손길은 종교를 떠난 모든 사람에게 닿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교회 측의 얘기다.

봉사자들은 이동차량에 2명분의 목욕물과 욕조를 싣고 집을 방문해 가정목욕을 실시한다. 방문하는 대부분의 가정이 목욕할 수 있는 양의 물을 데우기 힘든 상태이지만 이동차량에 물을 데울 수 있는 설비가 설치돼 추운 겨울에도 문제없이 목욕을 할 수 있다.

기자가 동행한 날은 책임관리를 맡고 있는 김 장로를 포함, 총 6명의 봉사자가 목욕봉사를 나섰다. 차량을 운전하는 김학만 집사와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박미경 간호사는 모든 이동목욕봉사팀에 동행한다.

이동목욕은 욕조를 방안으로 이동시켜야하기 때문에 남성 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자 교인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인원이 모자라는 실정이라고. 이에 김 장로는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여성 봉사자의 경우 "대기자가 5명이나 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목욕봉사, 건강관리까지 도맡아

목욕을 하기 전, 반드시 체크해야할 것은 환자의 상태다. 박미경 간호사는 봉사자들이 목욕 준비를 하는 동안 맥박과 혈압을 체크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혹시 목욕 중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료문제를 방지한다. 물론 목욕이 끝난 이후에도 맥박과 혈압을 체크해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 매주 목욕봉사를 하는 유춘란, 성선애 씨와 박미경 간호사. ⓒ이철용

박 간호사는 침대에서 욕조로 환자를 옮기면서 "지난주 보다 무거워지셨네요"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환자의 상태를 훤히 꿰고 있다. 박 간호사는 이동목욕을 도울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예민한 건강상태까지 파악하고 있어 안심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 가족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

20여 년 동안 간호사 생활을 해왔다는 박 간호사는 "간호사라는 것은 그저 내 직업일 뿐이었죠.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보태가면서 내가 가진 기술을 뜻 있는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마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런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환자 대부분이 만성질환이라 나아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더이상 해줄 것이 없지만 환자의 얘기를 들어주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보면 오히려 제가 큰 기쁨을 느끼게 돼요"라고 말하면서 봉사를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진다며 웃는다.

그녀는 현재 아주대에서 가정간호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정간호사란 집집마다 다니며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가정방문을 통해 많은 장애인과 환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계획 속에서도 박 간호사는 "장애인 행사에 간호사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며 봉사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람들, 이동목욕봉사팀

12명의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로뎀의 집'이란 장애인 시설을 아들과 함께 운영한다는 유춘란 집사는 대부분의 성도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목욕봉사를 세 번이나 한다고 했다. 유 집사는 이날 목욕대상자인 여성장애인을 마치 자신의 노모를 대하듯 살뜰하게 살폈다.

▲ 미소가 떠나지 않는 사람들, 안양교회 이동목욕봉사팀. ⓒ이철용
여성장애인에게 머리를 감기고 몸에 비누칠을 해주는 동안 유 집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입에서는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여성장애인에게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도 잊지 않았다.

이날 유 집사와 함께 목욕봉사를 했던 작은 체구의 성선애 집사는 갑자기 찾아온 취재진이 낯설었는지 연신 쑥스러운 얼굴빛을 하면서도 초롱한 눈만은 빛을 잃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김 집사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김학만 집사와 방병호 집사도 무거운 욕조를 들여놓고 내놓기를 반복해 힘이 들만도 했으나 시종일관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양제일교회는 30여 명의 농아들이 있는 농아부에 농아인 전도사를 임명했을 만큼 장애인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시설과 고아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장학기금을 모아 50여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노인대학을 운영하는 등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물론 그 대상은 종교를 불문한다.

봉사란 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안양제일교회의 목욕봉사팀은 자신이 하는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남을 위한다는 교만함을 떠나 목욕봉사를 하면 할수록 맘속에 기쁨이 샘솟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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