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평양 방문으로 북한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이 있으셨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지난번 나진선봉 방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평양에 가서 느낀 것은, 북한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대현이라는 고개에 가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평양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김일성 동상을 구경한다는 것은 관광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참배를 요구하는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꼿꼿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자리가 바로 길선주 목사님이 목회했던 장대현교회가 서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착잡하게 했습니다. 그 곳뿐 아니라, 175m의 주체탑 건너편의 인민대 학습당이 있는 곳도 평양 최초의 교회인 남산현감리교회가 있던 자리입니다. 또한 김일성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광신적인 참배 행렬을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북한 땅 전체를 뒤덮고 있는 주체사상이란 것이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 억누르로 있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들이 신뢰하고 추종해왔던 것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척박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양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너무나 어두웠고,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끔 마주치는 처녀들의 환한 웃음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이전에 갔던 나진선봉은 오히려 몇 년 전이었는데도 시골이라 그런지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번 평양 방문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소수계층 때문에 북한국민 전체가 짓눌려 사는 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이번 방문은 제가 상임이사로 있는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이성희 목사)의 사역을 확정짓고 합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 북측과 합의한 내용은, 우선 평양 제1병원 소아과를 현대화시키는 것입니다. 병원의 장비와 설비를 현대화시킬 것을 합의했습니다. 또한, 평양에 제빵 공장을 설립하고 빵급식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9월에 공장건립을 시작하면, 한 달 내에 완성된다고 합니다. 이 일은 고려당 주식회사에서 맡았는데, 우리 교회 김지정 성도(방배샘터)가 대표로 계신 회사입니다. 북한의 250만 명의 어린이(13세 이하)에게 구충제를 보급하는 일에도 합의하였습니다. 한국건강관리협회(회장:임한종 장로, 경동교회)가 구충제 250만 정을 기증해주어 이미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건물이 이미 완공되어 있는 나진선봉 로뎀제약공장에 시설을 갖추고 약품 생산에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계획이 계십니까?
북측과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도와 주었으면 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우선, 평양 소아과 병원을 심장병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까지 설비를 갖추는 일입니다. 이 시설은 약 천만 불 정도의 비용이 드는 일이라, 병원을 현대화하기로 한 이번 합의에는 포함시킬 수가 없었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남겨두어야 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12개 도청 소재지에 현대적인 소아과 병원과 빵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향후 5년간 구충제를 계속 보급하는 것을 목표합니다. 구충제를 5년간 매년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원가로 약 20억 원 정도 되는 약을 해마다 보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앰뷸런스 보내기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1차로 12개 도청소재지 소아과병원에 1대씩 보내려고 하는데, 이 모든 일을 위해 성도님들이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녀오신 후에도 여러 가지 사역을 진행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런 일들을 모두 다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사와 한민족복지재단이 이 일을 공동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21일, 운영이사장이신 장기천 목사와 동아일보사의 오명 사장이 협정에 사인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몇 십년 전에 고등부 담당 전도사와 고등부 회장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한민족복지재단의 사역을 홍보하고 협조함으로 이러한 일들이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지는 의의는 모금에 의한 재정적인 후원에도 있겠으나, 그보다도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모은다는 데 있습니다. 섬기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이 운동의 또 다른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운동이 확산되면, 초등학교와 연결해서 남한 어린이들로 하여금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빵 하나 값(150원)이라도 저금하고 섬기는 정신을 배우도록 할 계획입니다. 물론 대기업 하나가 후원하는 것이 훨씬 쉽고 돈도 많겠지만, 이러한 일들은 장래를 바라보는 것이고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발돋움이 될 것입니다. 그 가치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의견이 분분한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지 말씀해 주십시오.
북한 돕기가 김정일 집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면 굶주리고 고생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정권이 무너져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돈 다 챙겨서 외국으로 도망가면, 남아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더욱 심한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난민들이 국경으로 물밀듯이 몰려들텐데 총으로 막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2,300만 중에 300만 명만 남한으로 밀려온다 해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그 정권이라도 있어 주면서 외부의 지원을 받고 버텨서 백성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비용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합니다. 동서독의 예를 보아도, 결국 남한의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통일세가 부담스럽고 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산을 잘해야 합니다. 현재 군수비용으로 쓰고 있는 돈이 전체의 30%를 넘습니다. 그 중 10%만 삭감해서 통일비용으로 쓴다고 해도 적지 않은 돈이 될 것입니다. 남북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계산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마음으로 섬김을 결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로 이 시대를 살게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북한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랜 전 박세록 장로님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민족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주로 의료사업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일에 참여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 샘물교회 성도님들께서 우리 시대에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이 일에 기쁨으로 동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글은 박은조 목사가 7월 10일부터 1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분당샘물교회 신문인 <샘물이야기> 8월호에서 인터뷰한 내용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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